19세기 중국/러시아 시네마여행..'풍월/안나카레니나'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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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러시아의 19세기 풍속,옛도시 소주와 페테르부르크의 고풍스러운 풍경을 볼수 있는 영화 2편이 10월3일 동시에 개봉된다. 톨스토이 원작을 영화화한 "안나 카레니나"와 중국의 대표적 감독 첸 카이거가 만든 "풍월"이 그것. 두 작품 모두 양국의 19세기 풍물을 치밀하게 재현한 시대극으로 파란만장한 여성의 삶을 담았다는 것 외에 여러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의상과 소품 하나까지 귀족사회를 완벽하게 재현해 리얼리티를 살린 점,개인의 행복보다 가문의 명예를 더 중시하는 귀족사회의 위선적인 태도를 비판한 점, 무모한 사랑 (또는 불륜)의 참담한 결과, 심지어 주인공이 아편때문에 몰락하는 것까지 작품의 윤곽에서 디테일까지 흡사한 점이 많다. 여기에 소피 마르소와 공리의 주연 여배우 대결로도 관심을 모은다. "안나 카레니나"가 영화화된 것은 이번이 13번째. 드라마틱한 원작 덕분에 러시아와 프랑스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사랑받은 영화소재였다. 이중 가장 유명한 것은 그레타 가르보가 주연한 35년작과 비비안 리가 나온 48년작. 앞의 두 배우가 각각 퇴폐적 관능미와 요염한 미모로 불륜의 주인공을 재현했다면 소피 마르소는 특유의 청순미로 관습보다 사랑을 택한 뒤 처참한 최후를 맞는 상황의 비극성을 극대화시켰다. 배경은 1880년대 페테르부르크. 대지주 카레닌의 아내 안나는 모스크바에 갔다가 젊은 장교 브론스키를 만나 열정적인 관계에 빠진다. 이 사실이 알려져 아이와 사회적 지위 모두를 잃은데다 브론스키의 사랑마저 식어간다고 느끼자 그녀는 아편에 기대고 결국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진다. 미모의 배우들, 장엄한 성 페테르부르크 궁전, 화려한 의상, 들뜨지 않는화면, 게오르그 솔티가 지휘하는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의 음악이 고전의 향취를 더한다. "풍월"은 93년 칸영화제 그랑프리 수상 (패왕별희)을 통해 중국영화계의 얼굴로 떠오른 첸 카이거의 96년작. 이 작품은 섹스와 아편중독을 소재로 했다는 이유로 중국에서는 상영이 금지됐다. 배경은 19세기말 운하도시 소주와 이곳의 대부호 팡씨 가문. 집안의 상속인 젠다가 아편중독에 빠져 폐인이 된 뒤 뒤를 이은 사촌여동생 (공리)까지 같은 전철을 밟고 가문은 수렁으로 빠진다는 것. 이 과정이 어둡고 복잡한 팡씨네 집과 붉은 불빛이 일렁이는 상해 홍등가, 아편에 취한 사람들, 여자를 유혹해 돈을 뺏는 암흑가 조직과 함께 그려져 혼미한 중국정세와 암울한 미래상을 짐작케 한다. 공리는 신분낮은 집사 (장국영)에 집착하고 이 사랑은 그가 상해의 악명높은 지골로라는 사실을 안 뒤에도 이어져 결국 파멸을 맞는다. 아편연기가 만드는 어둡고 퇴폐적인 분위기속에 공리와 장국영의 매력이 돋보인다. "패왕별희"가 큰 스케일로 변화하는 역사를 조망했다면 이 영화는 인간의어두운 내면에 포커스를 맞췄다. "안나 카레니나"는 대우시네마, "풍월"은 제일제당이 수입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