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새 건설문화의 초석 .. 이건영 <교통개발연구원장>
입력
수정
아직도 버티고 있는 수많은 로마시대의 구조물들을 보면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천5백년이 넘은 바오로사원의 기둥은 도대체 어떻게 만든 것인가. 그 우람한 대리석 기둥에 밴 당시의 건설기술과 건설문화에 그저 숙연해진다. 거리거리에 널린 모든 유적들이 감동의 덩어리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지금도 남아있는 삼풍아파트의 잔해를 보면 스스로 부끄럽다. 최근 우리의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도곡동에, 인천에, 부산에 1백여층의 건물이 계획되고 있다. 이제 선진국이 되어간다고 하는데 아직도 우리의 주변에는 후진적인 기업윤리가 판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흘러서 최근 몇년간 대형 참사로 인한 재해가 망각속에 묻히고 있다. 우리는 거기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지난 몇년간 대형 참사들의 원인은 부실공사로 모아지고 있다. 대개의 경우는 설계도 부실이었고, 설계변경도 멋대로 되었고, 허가도 적당히 얻어냈고, 감리도 없었고, 시공도 멋대로 하청을 시켜하였고, 용도도 멋대로 변경하였고, 그때 그때 전문가의 도움도 없이 처리하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공무원들과의 유착이 있게 마련이고 그래서 허가와 준공 그리고 안전검사도 적당히 넘어가곤 하였다. 이같은 비리의 "사슬"이 요즘 노출되었다. 이 모든 과정이 바로 일그러진 우리 건설문화의 초상이다. 그래서 건설판에는 "노가다"란 아름답지 못한 이름이 붙고, 그룹의 건설사는 "비자금의 금고"처럼 인식되어 왔다. 건설업 면허가 완화되자 일반건설업체가 지난 수년간 수배로 늘어난 것은 금광을 찾아 달려온 골드러시는 아닌가. 과연 건설업이 "봉"이었는가.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의 건설투자는 국민총생산의 23%에 이른다. 건설대국이다. 미국이 7%, 일본이 18%이니 그만큼 허우대는 커졌다. 그리고 그동안 해외시장에서의 경험도 다채롭다. 그런데 우리 건설업의 내실이 부족한 것이다. 건설업계는 94년을 부실공사추방 원년으로 선언한바 있다. 그러나 아직도 건설시장에는 하도급비리 감리비리 감독비리 등으로 이어지고 부실의 고리는 더 끈끈하게 되었다. 건축물이나 구조물은 관리하기에 따라 수명은 무한이라 할 수 있다. 서양 사람들은 몇백년이 된 건물도 리모델하여 쓰는데 우리는 왜 이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새로운 건설문화의 지평을 열어야 한다. 첫째 가장 시급한 것은 낙후된 기술과 기술자의 부족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건설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우리기업의 해외활약상을 예로 들며 우리의 기술수준이 상당하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특수한 구조물에 부딪치면 우리의 기술수준은 너무 낙후되었다. 대형 국책사업 때마다 곤욕을 치르지 않는가. 현재 쏟아지는 건설물량을 소화할만한 기술자가 절대 부족하다는 것도 업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빌려온 기사면허를 걸어놓고 경험도 없는 기능인들이 적당히 하기 십상이다 심지어 사망자의 건설기술자면허에 값이 붙어 돌아다니고 있다. 지금 2백여개의 감리회사에 1만여명의 감리원이 있으나 거의 경험이 별로 없는 햇병아리들이다. 우리 사회는 원래 기술자에 대한 대접이 소홀하다. 공무원사회에서도 기술직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일쑤이다. 현재의 건설산업구조는 기술자를 양성하는 틀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행정 또는 경영만능 사고에서 벗어나 기술인들의 장인정신을 북돋워 주어야 한다. 둘째 합리적인 공정관리와 감리제도의 정착이 필요하다. 지금 건설회사의 일꾼들은 70년대 중동시장의 경험을 잘 알고 있다. 까다롭기 그지없던 외국인 감리자들에게 시달리던 기억 말이다. 그들은 타협이 없었다. 융통성이 없다고 얼마나 투덜대었던가. 그러나 지금 그때의 경험을 소중해 하고 있을 것이다. 문민정부 들어와 공무원들의 감독관제도를 폐지하고 전문가에 의한 책임감리제로 감리의 틀을 바꾸었다. 외국기술자를 채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직 책임감리제는 정착되지 못하였다. 경직적이고 부패하기 쉬운 관료의 통제보다 창의로운 민간의 자율쪽으로 가는 것이 옳다. 셋째 사회전반에 걸쳐 재해에 대한 인식과 인명관리가 우선되어야 한다. 재해란 사회 시스템의 붕괴이고 국가경제의 누수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불쑥 찾아와 우리에게 엄청난 손실을 강요한다. 그동안 애써 일궈온 성과의 한 모서리를 허물어놓고 만다. 홍수나 지진 따위 천재지변은 예방하기 힘들지만 인재는 바로 우리 탓이기에 더욱 우리를 안타깝게 만든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다양화하고 사회가 복잡다단화함에 따라 뜻하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인재를 만난다. 당연히 사고의 유형도 복잡해지고 항상 우리 주변에는 위험성이 잠복해 있다. 크고 작은 붕괴사고에서부터 엘리베이터 추락, 전기누전, 정전, 가스폭발,수도관 파열, 화학약품오염, 축대붕괴 등. 이런 것들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직결되어 있다. 이제 앞만 보며 뛰기만 할 것이 아니라 흘러내리는 손실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효율적인 국가관리란 재해를 최소화하여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도록 하는 것이다. 설령 그같은 재해를 당했다 해도 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새로운 건설문화를 위한 초석이 필요하다. 바로 지금부터.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