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7일자) 대선후보들의 선심성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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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대통령선거의 대결구도가 드러나면서 각 정당과 대선후보들에게 각종 민원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고 대선후보들도 이에 맞장구치는 식으로 온갖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후보들은 찾아가는 지역과 만나는 사람에 따라 하는 이야기도 달라진다. 엊그제 부산-경남 지역에 몰려든 대선후보들은 지역개발공약을 쏟아놓고 민원해결사임을 자처, 대선후보인지 시장 또는 지사후보인지를 의심케 했다. 각 정당과 대선후보들이 정책대안과 구상을 내놓는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지역주민과 이익단체, 심지어 지방자치단체장들까지 대선을 지역숙원사업의 기회로 삼아 많은 요구를 하고 있고 정당과 후보들은 이들의 요구에 영합하는 공약을 하고 있는게 문제다. 어떤 정책이든 그 결정과 시행에는 때가 있다. 때를 놓치면 좋은 정책이라도 성공을 거둘수 없거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또한 어떤 정책이든 국민 모두를 만족시킬수는 없다.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찬반양론이 있게 마련이다. 박수소리에 현혹돼서도 안되고 반대하는 목소리에 움츠러들어서도 안될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지도자의 지혜와 결단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각 지역의 숙원사업 해결을 약속하고 선심성 공약을 남발할 때 대선후에 오는 것은 국정혼란이다. 지방교부세 대폭증액, 지방공무원 정년연장, 농가부채 경감, 그린벨트 완화, 각종 지방개발사업 등의 공약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날 것이다. 각 지역은 그런 공약이 빈말인줄 알면서도 후보들이 무언가 약속해 주기를 바라고 후보들은 타후보보다 한발 더 나아가 민원해결 숙원사업해결의 최적임자임을 과시하는 풍토가 이번 대선에서도 재연될 조짐이 보인다. 정책대안과 구상, 그리고 공약 그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문제는 그런걸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은채 내놓는데 있다. 당선이 목적인 후보에게 득표에 도움되는 공약을 자제하라는 주문은 가혹할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민들은 거짓말하는 대통령,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을 뽑게 된다는 점이다. 92년 대선때 모든 후보들은 당선되면 쌀수입개방을 막겠다고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에 관해 국민에게 사과한바 있지만 다른 후보들은 이 문제에서 자유스러울수 있는가. 만일 그들이 당선됐다면 쌀수입을 막을수 있었겠는가. 그때 후보들은 모두 거짓 약속을 한 것이다. 어떤 공약을 내걸건, 어떤 사업을 약속하건 잊어서는 안될게 있다. 국가예산은 무한정 늘릴수 없으며 각종 자원은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자본도 기술도 인력도 시간도 한정돼 있다는 제약조건을 무시하고 한꺼번에 모든 일을 하려는 공약은 국민을 속이는 것밖에 안된다. 국정을 책임지려면 어려운 때일수록 국민들에게 응분의 책임과 역할을 요구할수 있는 그런 후보가 나와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