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규제파괴시대] (1) '규제개혁 어디까지 왔나'

고건 총리는 지난 3월 취임일성으로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옭죄는 규제혁파를 다짐했다. 현정부가 그동안 규제완화를 최우선과제로 추진해 오긴했지만 정작 기업이나 일반국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실질적인 규제철폐 노력이 미흡했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었다. 정부는 먼저 규제개혁관련 기구를 재정비했다. 재정경제원에 설치돼 있던 경제행정규제개혁위원회를 공정거래위원회로 이관했다. 이와함께 규제관련 최고의사결정기구로 국무총리와 대한상의회장을 공동의장으로 하는 "규제개혁추진회의"를 설치했다. 경제규제개혁의 기본방향은 국가경쟁력강화다. 구조개혁을 위해 정부의 시장개입을 축소하고 경쟁촉진으로 시장기능을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지난 상반기에는 28개 과제에 대한 규제완화 작업을 벌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전력산업의 진입규제 완화와 LNG(액화천연가스) 수입승인제도 폐지등은 그동안 한전과 가스공사의 독점체제에 경쟁을 도입한 대표적인 사례다. 또 입찰보증제도와 각종 영향평가제도의 개선, 건축관련 심의제도의 간소화등으로 국민들의 불편사항을 크게 개선했다. 반면 부처간 혹은 집단이기주의에 밀려 개혁이 벽에 부딪치기도 했다. 외국처럼 슈퍼등에서도 단순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추진하다 약사들의집단반발에 떠밀려 유예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건설업체에 소속된 건축사에게도 설계업무를 허용하는 문제도 건축사들의 반발로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다. 지난 상반기에 공정위는 주로 기업의 고충처리적 성격을 지닌 단편적인 과제를 주로 다루었다. 따라서 하반기에는 국민경제 전체에 파급효과가 큰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과제들을 선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 가령 산업입지와 공장설립의 경우 용지취득, 산업단지 분양 및 관리, 공장건축등 전과정에 걸쳐 덩어리규제를 없앤다는 것이다. 하반기에도 암초는 널려 있다. 특히 변호사 법무사 공인회계사 등 전문자격서비스분야의 수임료나 진입장벽에 대한 규제완화는 약사와 건축사의 전철을 되밟을 가능성이 높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입김도 무시할 수 없다. 부처이기주의도 넘어야 할 산이다. 최근 각 부처가 공정위에 제출한 부처별 규제개혁계획을 보면 규제개혁 의지가 얼마나 미약한지 잘 읽을 수 있다. 각 부처가 제출한 총규제수는 6천9백15건이었지만 이중 91.4%는 현행대로 존치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