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창간33돌] 한국기업 : 고도화되는 투자패턴

국내기업들이 다국적 또는 초국적 경영을 꿈꾸게 된 것은 WTO체제 출범과 세계경제의 블록화 정보화움직임 가속으로 기업들의 경쟁범위가 전세계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특정기업을 상대로 벌이던 "제한적인 경쟁"이 전세계 초일류기업들과 대등한 조건에서 싸우는 "무한 경쟁"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국내기업들의 세계화전략은 세계 초일류기업을 향한 새로운 장기전략 마련 본사 기능을 갖는 해외총괄법인 대규모 투자를 통한 해외복합단지 국제전문인력 양성과 본사조직의 국제화 등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최근 기업 해외진출의 특징은 그 자체로 독자적인 사업목표와 전략을 갖고추진된다는 점과 글로벌 경영이 국내경영 악화의 종속변수가 아닌 독립변수로부상했다는데서 찾아볼수 있다. 이는 기업 생존의 차원에서 해외진출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대 삼성 등 주요 그룹들이 내세우는 세계화전략을 보더라도 이는 쉽게 확인된다. 현대그룹은 계열사별 해외진출이 특징으로 주로 자동차와 전자부문에 투자가 집중돼 있다. 지역도 자동차와 전자의 최대 수요처인 미국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 최근엔 베트남 인도 등 동남아에 대한 투자비중을 강화하는 추세다. 전자분야에선 멀티미디어기기 PC통신단말기 등을 마케팅 지향형 사업군으로선정하고 해외선진업체와 제휴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2000년까지 3억달러를 투입해 생산, 연구개발, 마케팅을 입체적으로 연결하는 글로벌 판매망을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삼성그룹은 전 세계를 5대 권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별 해외본사를 축으로 글로벌 경영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동남아 북미 유럽 중국 등 5개 해외본사체제를 구축했다. 가장 독특한 점은 해외본사에 인사와 조직의 자율성을 줘 생산 판매 연구개발 자금조달 등 거의 모든 경영활동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현지완결형"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 삼성의 또다른 전략은 "복합화"로 전자의 경우 영국 윈야드와 멕시코 브라질 중국 인도 등지에 복합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화학도 전자및 부품단지와 연계해 해외공장을 복합화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있다. LG그룹은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동남아를 제2의 내수시장으로 만든다는 동남아 집중투자전략이 돋보인다. 일본 히타치와 함께 말레이시아에 13억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는 등 주력사업인 전기전자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세계 최고수준의 시장점유율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LG는 인력의 현지화에도 힘을 기울여 2005년까지 그룹 전체의 임원 20%를 외국인으로 채운다는 계획이다. "세계 경영"을 외치며 가장 활발한 해외사업을 펴고 있는 대우는 동유럽 러시아 등 저개발지역을 선점하는 전략을 갖고 있다. 위험도가 클수록 수익도 높다는 발상으로 특히 베트남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 대한 투자집중도가 타 그룹에 비해 높다. 거점지역에는 가전 조선이 동반진출하는 등 복합투자가 많다. 해당국 정부를 먼저 공략해 정부의 지원아래 현지금융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대우의 독특함이다. 선경그룹은 에너지와 화학사업에 집중돼 있는 그룹 사업구조의 한계를 정보통신사업 위성통신사업 등의 글로벌 경영으로 극복한다는 전략이다. 이를위해 그간 계열사별로 수행해오던 해외투자계획을 그룹차원의 세계화전략으로 통합했다. 국내기업의 해외투자금액은 96년말 현재 잔액기준 1백27억달러로 1년만에 25억달러가 늘어났다. 건당 투자규모도 급격히 대형화하고 있다. 지난 94년만 해도 건당 1백80만달러였던 것이 건당 3백10만달러로 커졌다. 지난해말이후 지속적인 불황으로 주춤하고 있긴 하지만 앞으로 이같은 해외진출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 틀림없다. 산업연구원은 앞으로 10년간 5대그룹의 경우에만 해외투자가 6백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이들 5대 그룹의 경우 해외투자액이 1백억달러(9조원)를 넘어섰고 이들의 진출지역도 세계 28개국 62개 지역에 이른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국내 경기의 호.불황과는 무관하게 앞으로도 꾸준히 추진될 것만은 틀림없다. 문제는 이미 시동이 걸린 글로벌 경영의 꽃을 활짝 피워 열매를 따는 것. 국내 산업공동화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글로벌 경영을 어떻게 성숙시킬 것이냐 하는 것이 21세기 기업 생존의 핵심요소인 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