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섬우화] (245) 제8부 누가 인생을 공이라 하던가? <5>

"그런데 아줌마는 무얼 하셔유?" "글쎄, 장사를 한다. 포목장사. 남편은 없고 혼자서 한다" "그거 아주 금상첨환데요. 그런데 아줌마는 느낌이 포목장사 같지 않다.교수같아" "얘, 교수가 무슨 큰돈 있어서 풍성거리고 노냐? 학문 연구해야지.너희들하고 놀려면 돈을 펑펑 써야 하는게 아냐?" "아줌마, 정말 마음에 든다. 나는 아줌마 같이 통큰 사람이 좋아요. 우리 시인 아줌마는 내가 그렇게 꼬셔도 안 들어. 우리는 뭐 목숨이 열개인줄 아셔유? 에이즈 테스트는 자주 받아유. 내 애인이 요구하기도 하구요. 테스트비는 보통 몇십장씩 주시지요. 신용상표 같은 거니까" "얘, 그것도 소용없어. 네가 테스트받은 다음 날이라도 동침하면 걸릴 수 있으니까. 정해놓고 사귀는 수밖에 없어. 당장은 그 방법밖에 없다. 모르는 사람은 아예 상대하지 않는게 좋아. 멀쩡한 미남미녀 환자들이 쌔고 쌨으니까" "에이즈에 대해 정말 전문가시네요. 그러니까 아줌마는 의사 같다" 그녀는 실색을 하면서, "의사하고는 거리가 멀다. 다만 책에서 알았을 뿐이야" 그녀는 새촘해지면서 저 쪽에 들어와 앉는 미아와 문수를 힐끗 본다. "얘, 문수와 미아가 들어왔어. 우리는 가는게 좋지 않겠어?" "괜찮아. 우리 문수가 나를 데려다준 곳이 바로 여기야. 내가 그 애 스포츠카 사주던 날 제가 한턱 내고 돈은 내가 낸 곳이 바로 여기야.너와 같이 있는데 뭐가 어떠니? 여기 애들도 우리가 모자간인 것을 잘 알아. 그리고 우리 엄마 동무해주라고 소개한 것이 바로 이 친구 갑수야" "맞어유 아줌마. 우리는 마음의 병을 고치는 치료사여유. 지금 우리 아줌마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동무가 아니구요, 육체의 치료사예요" 그 애는 눈썹하나 까딱 안 하고 술술술 잘도 눙친다. 하기는 화류계 3년에 는 게 그것 일 터. "아줌마도 취했으면 내가 바래다 드릴게요. 이 아줌마는 고주망태가 되어서도 꼭 집으로 가는 희한한 레이디에요. 징징 울면서도 꼭 집에서 내려요. 나는 문수 학생과는 형 아우 하는 사이인데, 그 녀석은 어머니를 위로하고 마음의 동무가 될 남자가 필요하다는 데도 이 아줌마는 마음을 안 열어요. 속 터지는 아줌마예요. 우리는 이런 아줌마를 절구통이라구 해요. 영 안 통한다니까" "얘, 내가 왜 절구통이냐? 허리가 28이면 날씬한데" "아니, 아줌마 마음이 융통성 없고, 때깔은 고운데 영 한심한 싱글을 우리는 절구통이라구 해요. 호호호, 안 통하는 여자라 그거죠" 그 녀석은 계집애처럼 허리를 잡고 웃는다. 그리고 강은자 시인의 손을 살짝 잡으며 은근히 그녀에게 교태를 부린다. 이쯤 되면 강은자는 아직도 이 집에서 찍히지 않은 절구통 손님인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