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섬우화] (246) 제8부 누가 인생을 공이라 하던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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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서글픔이 그 아이들의 입맛대로 놀아나는 결과로 치닫는다. 공박사는 병원에서 그런 유부녀들을 가끔 만났다. 젊은 애인이 갑자기 변신해서 안 만나주면 나이 들어 애인을 새로 사귀기도 어렵고 결국 사랑의 병이 들어 편두통과 각종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면서 면담을 하러 온다. 그러면 공박사는 빨리 잊고 다른 애를 사귀십시오, 그게 첩경입니다 한다. "이에는 이, 칼에는 칼"로써 치료할 수밖에 없는 병들도 많다. 그것이 바로 사랑병, 아니 바람기를 가라앉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절망하는 것이 가장 나쁘다. 태양은 내일도 다시 떠오르는 것이니까. 그날밤 공박사는 차를 그 곳에 세워놓고 택시로 돌아왔고, 갑수는 은자를 데리고 그녀의 집이 있는 역삼동까지 갔다. 그 후의 일은 알 수 없다. 그날밤 문수가 집에 왔을때 어머니의 술취한 메모리가 와 있었다. 공박사는 자기가 그날밤 은자의 일에 왜 흥미를 갖는지 너무도 이상했다. 보통 때의 그녀는 그러한 일에 야멸차다고 할 정도로 무심하거나 냉정했다. 냉정한 정도를 지나서 매정했었다. 밤 늦도록 그녀는 양주를 마시고야 잠이 들었다. 시골서 갓 상경했다는 덕대같은 남자 아이의 환상을 지우기 위해 눈물나는 노력을 하다가 3시가 넘어서야 수면제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자기 남편의 형편없던 섹스의 순간들을 기억하며 더럽게 남자복 없음을 서러워했다. 남편과의 결혼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 부분들이 많지만 그녀를 섭섭하게 하는 것은 섹스가 보통밖에 안 되는 것 같은 민박사에게서 조차 굉장한 엑스터시를 느꼈던 그간의 경험이다. 남편은 형편없는 조루증이었지만 그녀는 그런걸 깊이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자리가 좀 잡히고 남편도 상공부 국장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들 부부는 영원히 작별했다. 공박사는 밤새 땀과 괴로움으로 흥건히 젖은 침대의 매트를 갈아끼우고 민박사를 잃은 슬픔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무엇인가 큰 변신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야무진 결심을 한다. 공박사는 이튿날 아침 문수의 어머니 강은자 여사에게 전화를 한다. "뉴올리언즈 3층 전화번호를 알 수 없을까?" 힘이 다 빠진 음성으로 은자가 달콤한 콧소리를 낸다. "어젯밤에는 미안했어. 나는 지금에야 집에 막 들어왔어" 은자는 그러나 몹시 행복한 목소리다. 배고픈 아이에게 우유를 잔뜩 먹여놨을 때처럼 아주 만족하고 흐뭇한 음성이다. "축하해요, 은자씨. 그 애는 좀 위험하긴 해도 돈을 많이 지불하고 딴 여자랑 자지 못 하도록 해봐. 에이즈를 막는 길은 그 길밖에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