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금융빅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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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런데도 금융개혁은 지지부진이다. 여야가 대통령선거등 정치적 이슈에만 매달려 법안처리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개혁위원회는 참다못해 사실상 활동을 마감하면서 13개 관련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기까지 했다. 금융개혁을 보통은 빅뱅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금융개혁이 빅뱅이 될지는 의문이지만 요즘 일본만 해도 빅뱅논쟁이 한창이다. 우리는 경제위기에 처했으면서도 그 대응엔 너무 한가한 것이다. 빅뱅 (Big Bang)이란 말은 물리학자 조지 가모프가 제창한 우주빅뱅설에서 유래하고 있다. 금융을 둘러싸고 있는 규제와 보호장치를 대폭발시켜서 일거에 제거하자는 발상이다. 일본판 빅뱅은 2001년까지 금융제도를 개혁시켜 자유 공정 국제화된 금융시장을 확립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빅뱅은 어떤 청사진으로 낙착될지 궁금하다. 빅뱅하면 영국의 대처 전총리를 떠올리지 않을수 없다. 영국경제가 쇠락의 길을 걸을때 이 정체를 타개하기 위해 규제와 보호의 금융제도를 폭발시킨 것이다. 그 결과 자유화와 국제화가 과감하게 이룩되었다. 당시 영국은 독일의 벤츠 폴크스바겐 지멘스 등 거대기업과 대항할 산업체가 없었다. 독일은 월등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마르크화를 유럽의 기축통화로 끌어올리려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대로 놔뒀다가는 독일의 중앙은행 분데스 방크가 있는 프랑크푸르트가 유럽금융시장을 장악할 판이었다. 대처는 빅뱅이라는 대모험을 할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폐쇄적으로 운영되어 오던 금융보호를 모두 날려버리고 자유경쟁에 맡겼다. 이같은 조치로 경쟁력이 없는 영국의 전통적 증권회사들은 하나 하나 쓰러지기 시작했다. 독일 등 외국의 자본에 의해 매수되기도 했다. 비록 영국계 금융회사들이 외국계로 바뀌기는 했지만 런던은 외국자본이 몰려드는 세계적 금융센터의 지위를 확보했다. 영국의 산업중에서 금융업이 차지하는 고용비율이 1980년에는 5.6%이던 것이 90년에는 12%로 배이상 늘어났다. 한국의 금융개혁이 대처의 용단에서 배울 점이 무엇인가를 시사해주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