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금융불안의 원인 .. 최명주 <계명대 교수>

주식시장 불안이 계속되고 자금흐름이 경색되며 원화가치가 하락하는 등 우리의 금융이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는데 이견이 없다. 6%대의 경제성장과 물가안정등 양호한 거시경제 지표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93년이래 최저치를 기록하며 주식시장의 기반조차 위협받고 있다. 자금시장에서는 은행지준이 적수기준으로 1조5천억원의 잉여를 보이는 등 비교적 풍부한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자금이 예금주 금융기관 금융기관을 맴돌면서 기업의 자금난이 가중되며 금리도 하락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외환시장에서도 최근의 수출신장과 무역수지의 뚜렷한 개선에도 불구하고 대미 환율이 9백10원대를 넘어섰고 동남아시아 역외 시장에서의 NDF(역외선물환)의 경우 1천원대를 웃도는등 원화가치가 불안하다. 이러한 금융시장의 이상기류는 동남아시아형 신용위기론이나, 일본형 복합불황론, 실물산업의 구조조정에 따른 일시적 비용부담론으로는 명쾌하게 설명되는 것같지 않다. 오히려 그동안 우리가 고도 압축성장을 해오는 과정에서 실물성장의 수단으로 전락한 우리금융의 낙후성과 무리한 성장과정에서 빚어진 경제내 주름과 거품의 한단면이라는 각도에서 조명하는 편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어제 오늘의 일이라기 보다도 그동안 누적된 문제들이 금융시장의 신뢰기반붕괴라는 형태로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계기로 여러가지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에대한 진지한 평가를 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첫째 지난봄부터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우리와 이웃하는 후발 신흥공업국들이 겪어온 신용위기와 외환위기에 따른 주식시장 붕괴등 이른바 동남아시아형 신용위기가 우리에게도 다가오는 것인가. 신용위기론자들은 금융실명제를 후퇴시키고,지하자금과 자영업자의 뭉칫돈 유입을 유도하기 위한 상속세와 증여세의 면제를 비롯한 특단의 경제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의 거시경제상황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양호하다는데에국내외적으로 이견이 없다. 단지 외국인들은 우리기업의 재무제표 기록을 믿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 금융기관이 공표하는 부실여신 통계를 불신한다. 또 우리정부에 대해서 "한국은 그들이 어려울 때만 우리를 찾고 그 외에는 우리를 홀대한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즉 우리의 대내외 금융 경제정책에 규제가 심하다는 측면보다는 규제에 일관성과 투명성이 부족한 측면을 더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기업 금융기관및 정부의 대내외 신뢰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할진대, 금융실명제를 후퇴시킬 것이 아니라 관행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최근 회자되는 각종 비자금이나 지하자금이 건전한 금융거래질서속에 자리잡을 틈을 주지 않음으로써 우리금융의 불안요소를 근원적으로 줄일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인체의 신경조직으로 비유되는 금융시장을 특단의 경제조치와 같은 응급조치로 성급하고 거칠게 다룰 경우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금융이라는 신경조직이 자칫 마비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둘째로 근래 수년간 일본이 경험한 이른바 복합불황이 우리에게도 다가오는 것인가. 자산가격의 폭락이 금융기관의 담보채권가치를 하락시켜 금융기관이 부실화하고 이로 인해 실물경제까지 침체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부동산 경기를 부양할 필요성이 있는가. 이는 임시진통적 효과만 가져올 뿐 문제를 그르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이미 담보대출 관행에 젖어있는 금융기관들이 악화된 그들의 수지개선을 위해서도 부동산 담보취득을 더욱 선호하게 되고 신용평가에 의한 대출가능성은 원천 봉쇄될 것이다. 셋째 최근의 금융불안은 실물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치르게 되는 비용부담에 불과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따라서 통화공급을 늘리거나 증시부양을 위한 조세감면조치 등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다. 자금시장에서 비교적 풍부한 유동성을 가지고도 자금경색이 지속되고 금리가 하향안정세를 보이지 못하는 것은 은행들이 기업신용 관련자료를 믿지 못한데 큰 원인이 있다. 부실회계에 익숙한 우리의 풍토에서 금융기관의 신용평가능력이 배양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에 은행을 비롯한 공금융기관이 외형늘리기와 담보확보에 매달려 변형된 전당포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통화공급을 늘리거나 증시부양 정책보다는 금융기관과 기업간의 신뢰회복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를 위하여 기업회계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금융기관의 신용평가능력 배양이 필요한 것이다. 회계감사인의 민사상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기업과 금융기관의 회계신뢰도를높이는 유효한 하나의 대안이 될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