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에세이] 역사 바로 알리기 .. 신수식 <고려대 교수>

신수식 지금 월드컵 축구열기가 전국민에게 확산되고 있다. 매스컴에서는 한국이 "월드컵연속 출전 5회"라고 하여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 숫자에는 내년 프랑스 대회에 출전권을 이미 획득한 것을 전제로 하고, 여기에 다시 2002년 대회에 일본과 자동출전 예정까지 함께 포함된 것이다. 역사는 과거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정확하게 이해하고 실패한 역사는 그것을 거울삼아 후세의 교훈으로 삼으려는데 그 의미가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여러가지 경우에서 역사를 의도적으로 왜곡시키고 자의적으로 부풀려 과장시키고 있는 것을 볼수 있다. 그 원인은 경쟁의식에서 자기들의 우월함을 과시하려는 데서 찾을수 있다. 스포츠 부문에서는 각 신문사가 주최하고 있는 대회의 경우 6.25동란이나 다른 사정에 의해 경기를 중단한 것까지 연속대회에 포함시켜 대회기록을 늘려서 발표하고 있다. 대학의 설립연도도 어느날 갑자기 수십년을 늘려 발표하는 학교도 있다. 너무 오래되어 설립연도에 한두해가 착오된 것도 아니고 물론 졸업생을 배출한 것도 아니다. 일부 재벌기업의 역사는 계열회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계산할 수 있지만 구멍가게를 설치한 것까지 늘려 발표하고, 심지어 어느 회사는 6.25동란중 실제 영업하지 못한 몇년의 회계결산을 표지만 기록한 한권으로묶어 회사 몇십년과 회계연도에 차이가 있어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다. 현정부는 최초의 문민정부라는 사실을 강조해 오고 있다. 이승만 정부, 허정 과도정부, 장면 정부는 무엇이라고 표현할 것인가. 역사 바로세우기는 과거청산과 개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이 잘못한 점이 많아 감옥에 있다고 해서 5,6공화국이 역사적 사실에서 삭제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5천년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실제로 문화유산은 왕실과 고분및 고찰이 중심이 되고 있지만 목조건물의 대부분은 화재와 재난으로 소실되어 근래에 복원된 것이 많고 그나마 고찰의벽과 기둥은 철없는 수학여행 학생들의 낙서판이 되고 있다. 우리는 역사 바로 기록하기, 바로 알기, 바로 보존하기를 위해서 심혈을기울여야 하겠다. 후환이 두려워서 태워버리고, 땅속에 묻어버리고, 무식하여 헐값에 팔아버리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건망증으로 잊어버리고 있다. 서울 시내에서 6.25 흔적이나 일제 식민지 유산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반공교육의 표본이 될만하고 전쟁의 비참함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도시 재개발과 돌이키고 싶지 않은 역사속에서 사라지고 없다. 심지어 자기 가계의 내력도 몰라 동성동본끼리 혼인신고 때문에 고심한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의 역사속에는 자랑스러운 사실도 많고 거론하기조차 싫은 부끄러운 역사, 치욕의 역사도 있다. 이러한 모든 사실들은 우선 기록이 제대로 정리 보관되고, 관심있는 사람이쉽게 이용하거나 접근할수 있어야 하고, 올바르고 객관적인 평가가 뒤따라야하겠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역사적 사실은 이 점이 미흡하여 후대에게 진실되게 전수되지 못했다. 특히 근대문물,예를 들어 기업 고등교육기관 정당 언론 등의 역사가 선진국과 비교하여 짧은데다가 보존이 잘되지 않아 그나마 짧은 역사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역사를 바로 알리는 것은 진실을 알리는 것이어야 한다. 국가 기업 개인의 역사 모두가 진실이어야 하고 감추거나 왜곡되거나 부풀리기를 해서는 안된다. 일본은 식민지 통치자료, 정신대에 관한 기록도 우리가 접근할수 없지만 버리지 않고 있다. 그리고 메모하고 기록하는 습관은 우리로서는 배울만한 가치가 있다.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복사기 컴퓨터 등 각종 문명의 수단을 통하여 과거보다 좋은 여건에서 역사적 사실을 모든 부문에 걸쳐 기록.보관할 책임이 있다. 그것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전문가에게 맡기더라도 진실된 자료의 관리는먼저 살다간 선배들의 몫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