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1일자) 금융위기에 냉정한 대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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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씨년스러운 겨울날씨처럼 금융위기가 우리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어제도 원화환율이 장중 한때 상한선까지 올라 외환거래가 중단됐다가 중앙은행의 개입으로 달러당 9백65원10전으로 마감됐고 주가하락폭도 21.56포인트에 달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정부의 금융안정대책 발표가 무색할 지경이다. 그렇다고 달리 뽀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당분간은 우리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지금의 어려움을 견뎌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먼저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회복돼야 하며 아울러 정책의 우선순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환율급등과 주가폭락 그리고 기업도산을 보는 시각부터 고쳐야 한다고 본다. 즉 위기나 혼란이라기 보다는 거품붕괴에 따른 조정과정을 파악하는 냉정한 자세가 필요하다. 단지 미리 대비히지 못하고 방심하다가 당한 일이고 시장개방폭이 확대된뒤처음 겪는 진통이라서 불안감이 클뿐이지 당장 우리경제가 결딴나는 것은 아니다. 둘째로 정부의 시장개입은 불가피하지만 최대의 효과를 얻도록 시기선택에 특히 신중해야 하겠다. 환율급등 환차손누적 외국인수식매도 주가폭락 외국인주식매도 외화유출 환율급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서둘러 차단돼야 하지만 지금 정부가 시장개입을 한다고 해도 상황이 달라지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대략 11조원으로 추산되는 외국인 보유주식중 얼마가 팔고 떠날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주식매물및 달러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면 기관투자가나 한국은행이 개입하는 것은 자칫 시장의 자율반등만 가로막기 쉽다. 다행히 국제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있고 짧은 기간동안에 큰 폭의 주가하락과 환율상승이 일어난 만큼 금융시장이 냉각기를 가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개입해도 늦지는 않다. 다만 상황을 악화시키는 뇌동매물이나 투기수요를 규제하기 위한 시장개입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셋째로 우리경제의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하겠다. 부실기업 부실채권을 서둘러 정리해야 하며 금융기관의 통폐합을 비롯한 금융개혁도 강도높게 추진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경쟁력강화와 신인도 회복만이 궁극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한예로 단순히 돈만 푼다고 부도가 안나는 것은 아니다. 풀린 돈이 실수요자에게 흘러가지 않고 은행창구에 묶여 있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이왕 현금차관 도입확대, 채권시장 조기개방 등을 결정했으니 이번 기회에 자산담보부 채권발행을 허용하는 등 각종 금융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자금중개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끝으로 경제안정대책에 따른 부작용에 대비해야 하겠다. 특히 걱정스러운 것은 물가불안이다. 환율급등으로 수입물가의 상승압력이 불가피한데다 그동안 풀린 돈도 적지않은 만큼 당국은 소비절약유도와 통화관리에 힘써야 한다. 또한 비상시국에 투기행위나 불법파업과 같은 집단이기주의는 결코 허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