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1일자) 기아회생 자기의지에 달렸다

그동안 국민경제전반에 엄청난 충격을 주며 장기간 표류해온 기아사태는 핵심 변수였던 김선홍 회장의 거취문제가 지난 29일 김회장의 전격사퇴로 매듭지어짐에 따라 본격적인 해결 국면에 들어섰다. 정부와 채권단이 일단 법정관리를 통한 기아사태의 해법을 확정한 시점에서 이루어진 김회장의 퇴진은 사태발생 초기처럼 사태해결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앞으로 기아문제의 신속한 처리에 큰 도움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한때는 전문경영인의 상징이었지만 결국 무리한 사업확장에 따른 그룹 부실화의 책임에다 개인비리 내사 등의 막다른 골목에서 "불명예 하차"한 김회장의 퇴진을 두고 항간에는 엇갈리는 평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김회장의 공과를 지금 논한다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그의 사퇴를 계기로 어떻게 하면 하루 빨리 기아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느냐 하는데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 당장 경영권을 누가 쥐느냐는 것이 일차 관심의 대상이 될수 있겠지만 정부와 채권단이 일단 재산보전 관리인으로 내부인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은 사태수습을 위해 전향적인 자세라고 할수 있다. 종업원들의 사기를 고려하고 자동차산업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관리인 선정이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정부와 채권단은 법원의 재산보전처분이 내려지는 대로 그동안 약속했던 지원책을 가능한한 신속히, 그리고 과감하게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만으로 기아의 회생이 보장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회사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회생 의지이다. 과감한 자구노력은 물론 차질없는 생산과 출하, 노조의 뼈를 깎는 반성과 제2의 봉고신화를 창조하겠다는 굳은 각오가 없어서는 안된다. 정부는 기아자동차를 공기업으로 운영하면서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국민기업으로 재탄생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어느 업종보다도 국내외 경쟁이 치열한 자동차산업에서 비효율의 대명사격인 공기업으로 승부한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는 시각도 있다. 오히려 궁극적인 해결책은 제3자 인수밖에 없다는 채권단의 인식이 더 현실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아노조나 채권단이나 현단계에서 제3자 인수문제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문제는 차기정권 출범후 상당기간이 지나야 본격 거론될 상황변수이기 때문에 오늘의 논리가 아닌 내일의 논리로 풀어야할 과제이다. 기아 정상화의 최대 장애물로 여겨져왔던 김회장이 퇴진한 지금 우선적으로해야할 일은 하루 빨리 조업을 정상화시키는 일이다. 김회장이 퇴임성명에서 노조의 파업철회를 간곡히 당부한 것도, 기아를 회생시키는데 있어 노조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있다. 기아노조는 자신들이 그토록 반대하는 제3자 인수를 막기 위해서라도 즉각 파업을 끝내고 생산라인에 복귀해야 한다. 종업원 스스로 적극적인 회생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외부의 지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