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낙관과 비관

요즘 사람들끼리 만나면 도대체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이냐고 묻는 것이 예사다. 이러다가는 폭삭하는것 아니냐고 낙담하는 비관론도 많다. 그러나 우리경제의 장래에 대하여 누구도 큰소리로 장담할수 없다. 아주 조심스러운 낙관과 비관이 겨우 혼재할 뿐이다. 경제연구소들의 경제전망도 모조리 뒤틀리고 있는게 현실이다. 거대기업의 연이은 도산, 환율 주가 등 온전한 것이 없다. 심지어 경제에 가장 큰 일단의 책임이 있는 정부조차도 갈피를 못잡고 우왕좌왕한다. 최근에는 이런 우리현실을 비관하여 이민을 가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외국의 석학중에선 그래도 한국의 앞날은 어둡지 않다고 격려해주는 사람도 있다. 정부의 경제실책에 대해 삿대질하는 사람들도 있다. 경제의 펀더멘틀스 (기본조건)는 건전하므로 걱정할것이 없다고 안이하게 대응한 것이 오늘의 화를 자초했다는 질책이다. "낙관이란 일이 제대로 되어가지 않을 때 만사가 잘 되어간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광적 상태다"라고 한 볼테르의 말이 떠오른다. 비슷한 말로 "낙관주의가 가장 왕성한 곳은 정신병원이다"라는 경구도 있다. 모든 것을 무조건 낙관만 해서는 오히려 화를 막을 수 없다는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비관주의에만 우리 경제를 맡길수는 없다. 우리의 혼을 죽이는 것이 비관론이다. 비관론의 팽배는 무에서 유를 창출한 경제개발의 혼을 앗아갈수 있는 것이다. 한국이란 함대가 태풍속에서 이를 뚫고갈 동력을 주는 엔진을 잃게하는 것이 비관주의다. 비관과 낙관의 요소들을 조화시켜 융합해야 한다. 비관론으로 우리의 위기적 현실을 철저히 검증하고 낙관론으로 이를 돌파할 정신적 제도적 재무장을 해야 한다. 사실 경제개발 초기만 해도 비관론이 없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이렇다할 물질적 자원이나 기술적 축적이 없는 나라에서 부유한 나라가 된다는 것은 이루기 어려운 꿈이라는 것이었다. 이제는 우리여건이 그때보다 좋아진 것이 국제적 추세다. 물질적 자원보다 지적 자산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요는 비관을 통해 이를 낙관으로 승화시키는 혼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