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취업전선] (8) 정규직사원 "하늘의 별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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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미(25)씨는 얼마전 대학졸업 후 2년동안 근무하던 항공사를 떠났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매력이 있지만 평생직업으로는 적합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상최대의 취업난이라는 요즈음 새직장을 구하러 다닌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원을 모집하는 기업도 줄었을뿐 아니라 그나마 모집을 한다해도 임시직이나 계약직연봉제가 대부분이라 그녀가 생각하던 정규직 사원으로 들어가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임을 새삼 뼈저리게 느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부설 노동경제연구원이 지난 8~9월에 걸쳐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국내에서 연봉제를 도입한 기업은 모두 54개사. 거기에 연봉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는 업체들도 정규직 사원을 줄이고 계약직사원의 비율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2분기 현재 1년이상 고용된 상용근로자는 54.5%에 불과하며 나머지 45.5%는 모두 계약기간 1년이하의 임시직이나 일용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계는 연봉제와 계약제가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는 분야로 꼽힌다. 한미은행은 지난 9월말 전문대졸 이상의 인턴행원을 모집했다. 인턴행원은 상여금없이 월 1백만원정도의 월급을 1년간 받은 후 성과에 따라 정식행원으로 채용된다. 노조의 반대성명 등 잡음에도 불구하고 지원자는 4천명을 넘어 80대1의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취업난을 그대로 반영해 준 것이다. 동화은행도 2년전부터 계약직 사원을 선발하고 있다. 3년의 계약기간동안 이들은 정규직 보수의 75%수준을 받지만 지난해 경쟁률은 정규직보다 높았다. 올해는 정규직과 계약직을 반반씩 선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나은행의 경우 사무직 직원 모두에 대해 매년 연봉계약을 갱신하며 개인성과에 따라 차등을 두고 있다. 실적급 연봉제가 가장 먼저 본격 도입된 곳은 증권업계. 한때 억대 연봉의 샐러리맨이 등장해 화제가 됐던 업종도 바로 이 업종이다. 동원증권은 지난 4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연봉제를 도입했다. 현재 이 회사의 영업사원은 전원이 연봉제를 신청한 상태이다. 그러나 실적에 의한 연봉제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부작용도 생겨난다. 이 제도를 실시한 후 10% 정도의 사원은 급여가 줄었다. 실적급 연봉제 아래서 급여가 줄었다는 것은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급여의 상승 정도가 승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장래가 불투명하다고 느낀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거나 호시탐탐 전직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계약직.연봉제도입 확산으로 노동시장은 그만큼 불안정해지고 있는 것이다. 정규직사원으로 들어가기 어려우니 일단 계약직 자리라도 확보해 놓자는 심리가 작용, 계약직 경쟁률을 "천문학"적으로 치솟게 했다. 입사만 하면 정년까지 일정한 월급을 받으며 일할 수 있던 시절은 끝났다. 이제 취업준비생들은 극심한 취업 한파속에 계약직원이나 아르바이트 사원자리라도 찾아 뛰어야 하는 절박한 처지가 된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