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증시 뒤흔드는 외국인] (5.끝) 한국식 경영관행 '문제'

"외국인을 포함한 소액주주를 무시하는한 외국인들은 더이상 한국기업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10월초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한 펀드매니저는 언론사를 찾아오자마자한국기업에 대한 불신감을 강하게 표출했다. 널리 알려진 미국계 헷지펀드의 동아시아 담당 펀드매니저인 그는 그가 맡고있는 자산 80억달러 가운데 7억달러정도를 한국에 투자하고 있다. 한국기업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그도 외국인과 소액주주를 무시하고대주주 위주의 경영관행을 일삼아온 한국기업에 더이상 투자하지 못하겠다는불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가 문제삼은 것은 소액주주들에게 별다른 혜택을 주지 않으면서 투자자금을 어가려고 하는 한국기업들의 증자관행이었다. 주식시장을 낮은 가격(배당금)에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으로 인식하는 대주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때문에 물량이 늘어나면서 주가는 떨어지고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는 희석되고 만다는게 그의 설명이었다. 주가 방어를 위한 노력이 전혀 없다는 점도 외국인들의 불신을 사고 있다. 미국의 경우 주가관리를 위해 상장사들은 적극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다. 지난해 자사주 취득규모는 1천1백60억달러(98조원)로 기업이익의 약 20%수준이다. 이는 뉴욕증권거래소 싯가총액의 약 16%에 달한다. "주주없는 경영은 없다"는 주주중시 경영의 단면이다. 지난달 27일 뉴욕증권거래소가 사상 최대의 낙폭을 기록한 다음날 IBM은 개장 1시간만에 35억달러어치의 자사주 매입계획을 발표해 주가상승을 주도할정도로 자사주 매입은 일반화돼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증시침체가 지속됐던 지난해 국내 상장사들의 자사주 취득규모는 1백27건 7천7백99억원. 지난해말 싯가총액(1백17조3천6백99억원)의 0.66%에 불과하다. 그나마 M&A방어차원에 자사주를 취득하는 곳이 많아 소액주주 보호장치로는 미흡하다. "최소한 채권금리 이상의 수익율을 올려줘야 주식투자를 할수 있는데 한국기업들은 그런 노력도 없이 공짜로 투자자들의 돈을 긁어가려고 한다"(영국계 연기금 관계자)는게 단순한 불평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대목도 외국인의 불평거리다. 외국기업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있어 주주에 대한 기업설명회(IR)가 일반화 돼있다. 매년 주주와의 모임이 열리며 실적에 대한 보고가 이뤄진다. 소액주주들은 심지어 경영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모든 경영보고는 대주주에게만 이뤄질뿐 기업경영의 투명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온갖 분식결산으로 이익을 빼돌려 대주주만 배불린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2월 미국계 헤지펀드인 타이거펀드에서 "조선맥주의 순이익이 당초 회사측이 추정발표한 수치보다 작다"며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다. 이밖에도 외국인들은 꾸준히 소수주주권을 행사하며 직.간접으로 경영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경영관행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자 외국인들은 제풀에 지쳐버렸다. 한국의 금융시스템과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조차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더이상 외국인들이 주식을 사주기를 바라는게 무리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