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섬우화] (265) 제9부 : 안나푸르나는 너무 높다 <4>

김영신의 편지는 뉴욕으로부터 였다. 강은자는 병원 창가에서 그 흘림체의 편지를 반갑게 뜯는다. 그녀의 편지는 평범한 팬레터가 아니었다. 시를 쓰는 친구에게 자기의 비극과 운명을 속속들이 고백하는 담백하고 고백적인 긴 편지였다. 강은자는 자기만 그런 비극을 겪으며 살았다고 생각하다가 영신의 진실어린 편지를 받고 참으로 많은 위안을 받는다. 그녀는 어디로 어떻게 보낼 계획도 없이 영신에게 긴 답장을 쓴다. 인생의 깊이와 회한을 담은 편지를 그녀는 하루종일 썼다. 장편 시처럼 아주 잘 된 답장을 쓴다. 강은자 시인은 영신의 편지를 공박사에게도 보여주었다. 그들은 정말 아주 오래간만에 학교때의 순수한 우정을 되찾은 듯 진정으로 친구의 괴로움을 나누어 걱정해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영신이 뉴욕의 백명우 연주 여행에서 돌아왔을때 지영웅은 마지막 프로시합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신이 주선해주고 간 요리사가 어떻게나 지영웅의 영양관리를 잘 해주었던지 그는 최고의 컨디션으로 시합에 임하고 있었다. "영신, 시합이 끝날 때까지는 우리 만날 수 없지? 나는 저번 실패를 거울삼아 이번에는 틀림없이 프로를 거머쥘 거야. 정말 고마워. 그러나 나때문에 일부러 자꾸 여행하지는 말아요" 그녀는 세계 어디에 가 있든지 하루 한번 지영웅에게 전화를 해주었다. 어머니 같은 사랑과 누님 같은 보살핌과 연인으로서의 열정을 담아서.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