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존재의 이유 .. 김형수 <정치부장>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국회법 제4장 24조에 따라 국회의원이 임기초에 국회에서 하게 돼있는 선서의 내용이다. 헌법 제3장 54조에는 국회의원의 여러가지 직무중 하나로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확정한다"는 내용이 있다. 물론 국회의원의 주요기능은 입법에 있지만 예산안을 심의하는 일은 행정부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주요 기능으로 민주주의 3권분립정신에 따른 것이다. 부실하다는 평가를 늘 받아왔지만 그래도 의원들이 예산심의에는 어느 정도 성의를 보였었다. 그러나 이번 회기에는 수박겉핥기조차 되지 못하고 있어 그 "존재의 이유"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 헌법과 국회법을 뒤져보고 찾아낸 조항들이다. 국가이익을 우선하는 선량들을 위해 국민이 부담하는 액수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아봤다. 의원 한사람에게 지급되는 금액은 봉급 특정업무비 급식비 차량유지비 등을포함해서 월 평균 6백여만원. 웬만한 회사원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액수다. 의원 한사람에 허용되는 유급보좌관 1명 비서관 1명 및 비서 3명의 인건비까지 감안하면 의원 한사람에게 지급되는 액수는 가볍게 1천만원을 넘는다. 헌법과 국회법에 규정된 그들의 직무를 감안한다면 사실 그리 많지 않은 액수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의원활동에 제약을 받는다는 이유로 의원수당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의원의 직무와 봉급을 거론하는 이유는 의원들의 최근활동을 보며 그들의 "존재이유"에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회기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어 어느정도 허술한 국회가 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회기를 1개월 단축하고 국정감사 일정을 단축할 때 이미 예견됐던 일이기는하지만 본격적인 예산안 심의 일정이 시작되며 의원들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게 한다. 대통령선거는 물론 중요하다. 정치인들 말대로 21세기를 책임질 국정운영자를 뽑는 행사인만큼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지난주 어느날 예산안을 심의하는 국회예결위의 회의 모습은 도를 지나친 것이었다. 회기가 일주일도 남지 않았던 시점에서 재적의원 50명중 10~15명만이 참석했고 그나마 질문은 정치공세일변도였다. 나머지는 어디가서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소속정당의 대통령후보당선을 위해서 활동을 했거나 아니면 어느 줄을 잡고 어느 집단으로 옮겨야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을지 탐색하기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국회의원이란 고달픈 직업인이다. 당선되는 날부터 다음번 당선을 위해 뛰어야 한다. 지역구를 누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공천을 확보하는 것이다" 언젠가 한 중진의원이 사석에서 던진 말이다. 허물없이 말할 수 있는 모임에서 한 발언이니만큼 그의 솔직한 심경을 토로한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국회에서의 활동보다 대통령후보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고 합종연횡이다,연대다 해서 매일 터져나오는 후보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그들의 모습은 이 의원의 말을 토대로 한다면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렇다면 그들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너도 섬이냐"는 비아냥에서 연유된 이름을 갖고 있다는 여의도에 동양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의사당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도 국회의원인가"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