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9일자) 금융개혁 이제부터 해야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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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결국 주요 금융개혁법안들을 처리하지 못한채 정기 국회가 폐회된 시점이고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환율이 이미 1천원선을 넘어선 가운데 매도세가 사실상 실종돼 외환시장이 큰 혼란을 빚고 있어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가 큰 현안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금융개혁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외환위기가 가중될 것"이라고 되풀이해온 재경원의 주장은 다소 억지가 없지 않았지만 실제 나타나는 결과는 그런 양상이 될게 확실하다. 이미 나타난 외환시장상황이 그런 꼴이고 외국 금융기관들이 금융개혁법의 "좌초"를 한국계 은행들의 부실채권 해결방안이 실종됐다는 의미로 확대해석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다. 바로 이런 상황을 감안한 종합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이번 정기국회에 올렸던 금융관련법 제.개정안이 일괄해서 처리되지 않았다고 해서 금융개혁의 당위성이나 절박함이 퇴색된 것은 절대로 아니다. 우리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한은법개정 및 통합금융감독기구 설치문제가 금융개혁의 최대이슈가 된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금융겸업주의가 세계적인 추세인 이상 감독기구통합은 어떤 형식으로든 이루어져야 하고 금통위 의장을 한은총재가 겸임하는 것도 관치금융을 시정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만, 이들 문제는 새 정부의 과제인 재경원을 포함한 정부기구개편과 함께 다루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본다. 따라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두 법 처리를 보류한 것을 금융개혁의 무산이라고 해석하는데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보기에 따라서는 금융개혁을 위해서 오히려 바람직한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재경원은 우선 현행법으로 가능한 금융산업개편을 서두르면서 가장 절박한 과제인 외환시장 안정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부실 종금사에 대한 외환관련 업무정지 등 단기처방은 물론 금융기관 통폐합 등 정말 관심이 모아지는 금융산업개편작업은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한은법 등의 개정작업이 마치 금융개혁의 전부인양 이에 매달려온 자세에서 벗어나 기업과 상업금융기관이 관심을 갖고 있는 개혁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현시점에서 태풍의 눈이 외환시장이란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17일 오전까지 안정세를 보이던 달러환율이 중앙은행 시장개입이 중단되면서 오후부터 급등세로 돌변, 1천원선을 넘어선데 대해서는 억측이 구구하다. 금융개혁법안 처리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재경원이 의도적으로 시장개입을 말도록 지시했다는 시각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억측은 글자그대로 억측에 불과할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 오후들어 갑자기 시장개입을 중단했다면 가용 외환규모나 시장상황 등 경제적 측면에서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통화당국의 외환시장개입은 그 성격상 주관적인 판단이 불가피한 문제라고 볼 때 이를 금융개혁법과 연관시켜 악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결코 보탬이 되지 않는다. 외환시장안정과 관련, 쟁점화되고 있는 것이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이른바 구제금융을 받느냐 마느냐는 것이다. IMF회원국이 특별한 절차없이 정상적으로 IMF에서 인출할 수 있는 돈은 출자한도의 3배까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33억달러다. 이 선을 넘으면 IMF와 대기성(stand by)차관협정을 맺어야 한다. 이 경우 성장률 물가 국제수지 통화량 등 주요 거시경제지표와 정책변수운용에 관한 협의의무를 지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80년대초반까지 이 협정을 맺어 매년 IMF측과 정책협의를 해온 선례가 있기는 하지만, OECD회원국이 된 지금 다시 이 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것은 우선 감정적으로 내키지 않는 일면이 있다.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국가는 물론 영국도 한때 파운드화 방어를 위해 IMF구제금융을 받기는 했지만, 어쨌든 자랑스럽지 못한 일인 것만은 틀림없다. 실제로 5백억달러(버그스텐IIE이사장 추정)규모의 구제금융을 받는 것이 결코 용이한 일도 아니다. 미국은 의회가 아시아지역 통화안정을 위한 지원에 소극적이고, 일본은 전국규모의 도시은행인 다쿠쇼쿠 은행이 도산하는 등 자국 금융시장사정도 불안한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체면"이나 IMF와의 정책협의에 따른 번거로움을 이유로 구제금융을 받지 않을 만큼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게 금융관계자들의 지배적인 진단이란 점을 재경원은 인식해야 한다. 이제 개별은행단위의 교섭으로는 외자도입이 힘겨운 상황이라는게 외국환은행 국제업무관계자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IMF대기성차관은 합리적 경제운용을 보증하는 일종의 보증서가 돼 국내 상업금융기관들의 외자도입에도 보탬이 될 수 있다. 새삼 그런 보증서를 필요로 하게 됐다는 것이 서글픈 일이지만, 정부나 국민 모두가 현실은 현실로 받아들이고 잘못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대기업그룹의 현금차관 등도 조건없이 허용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