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일자) 국민 모두가 책임 느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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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곧 망한다고 얕볼 자격이 우리 지도자에게 과연 있었는가, 만사 지도자만 모자란다고 욕할 자격이 시민에게 과연 있는가, 타인은 몽땅 잘못이고 오직 나만 예외라고 빠질 자격이 "나 자신"에게 과연 있는가. 이 물음 앞에 4천만 모두가 스스로 반성하고 한가지 부터라도 고쳐 나가지 않으면 길이 없다. 그렇지 않고, 조금 허풍기 있으면 너도 나도 대통령 하겠다고, 거기 줄대서 총리 장관 한자리 하겠다고 온통 정신을 잃은 감투싸움 판국이 이대로 조금 더 가다간 큰 일이다. 경제뿐 아니다. 직장 가정 사회가 송두리째 붕괴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아무데도 없다. 그런 가위눌림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정치권의 혼란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경선에서부터 각당 구석구석의 모임과 논쟁과 흩어짐이 어찌 그리 똑같이 무원칙하고 이기적인가. 모두 저만 잘나 그 흔한 의리도 인격도 양심도 찾아볼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새빨간 거짓말을 표정 흐트리지 않고 해넘겨야 유능하고, 어제 어디서 한 말을 오늘 여기선 안했다고 잡아떼야 장래성있는 정치가다. 어디 정치판 뿐인가. 관청은 부처권한 확장에 정신이 없고, 중앙은행 엘리트들은 이 중요한 때 떼를 지어 태업을 한다. 경찰관이 노상에서 "삥땅"을 하고 지하철은 시장 자리 빈 틈에 예산탓뿐,죄고 기름치는데 게을리한 나머지 시민은 매일 생고생을 한다. 도심이건 변두리건, 공원이건 야외건 이런 무질서가 해방직후나 피란길 이래 또 있었던가. 극도의 염세적 흉포한들이 양민을 약탈 겁탈하고 그 속에 10대가 늘어난다. 인도위엔 좌판 오토바이 자전거 뒤엉켜 사람이 걸을수 없고, 차도엔 욕짓거리와 멱살잡이가 규칙 내동댕이쳤다. 이 무질서 속에 하나에서 열까지가 오직 잘못은 정치라는, 그나마 유일한 국민적 합의가 성립돼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다. 원초적으로 그런 지도자를 좋다고 뽑은 유권자에게 잘못이 있고, 그런 과오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고 있으니 더 큰 걱정이다. 6.29선언으로 군사통치가 약점을 보인 즉시부터 이미 이 나라 시민들은 발을 잘못 내디뎠다. 일신 이기주의, 가족 이기주의, 집단 이기주의에만 이골이 났다. 생산성 안 따르는 고임금, 여행 자유화에 외화 낭비, 사치품에 향락추구로 너무나 거침없이 날을 지새왔다. 기업도, 정치도 겉멋에 겨워 아까운 자산을 낭비, 고비용-저효율의 총체적 낙오사회를 부지런히도 만들어 왔다.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은가. 지도층만 나무란다고 해결이 되나. 실로 무지하면서 오만한 지도자 이상 무서운 사람 없다. 그러나 그런 손짓과 탄식만으로 일이 풀리질 않는다. 그러기엔 이미 때를 한참 놓쳤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한사람 빠짐없이 자기가 손에 닿는 일부터 옳은 방향으로 실천해가야 한다. 얼굴 바뀐 경제관료가 외환위기에 단기 중기 대책을 내고, 모든 경제주체는당장 절약부터 실천해야 한다. 후보들은 이제 위선을 벗고 이 난국을 극복함에 있어 현직 대통령과 책임을 최소한은 나눠져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