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 경제] (3) '기업, 변해야 산다'..'거품잔치' 끝나

"부채비율 4백%, 신규투자 차입금의존도 80%, 식당운영에서 중화학공업까지" 부도유예에 들어간 "주식회사 한국"을 이끌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면면이다. 초고속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면서 빚어진 불가피한 결과들이긴 하지만 거품경영의 부산물임을 부인할수 없다. 문제는 이같은 기업구조로는 이제 생존 자체가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대의 개막으로 과거 제도적 보호막과 금융권의 무조건적 지원이 불가능해지고 덩치불리기식 경영이 더이상 설자리를 잃게 된 것. 30대그룹까지 부도도미노에 휩싸이며 최악이라고 아우성친 올해의 경영환경이 그 서막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이런 연유에서다. 내달 IMF의 구제금융이 본격화되면 기업을 지탱시켜 주던 경영외적인 지지대는 모두 사라지고 말그래로 홀로서기의 출발점에 서게 되는 셈이다. 빚 경영 청산은 이같은 홀로서기를 위한 최우선 과제로 꼽히고 있다. 과도한 차입의존경영이 재무구조를 악화시키고 대수롭게 않은 악재에도 흔들리게한 핵심요인이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국내기업들 사이에 "사업자금=외부차입금"이라는 등식이 은연중에 경영의식의 틀로 자리잡아온게 사실이다. 신규사업을 할때 자기자본이 20%만 갖고 나머지 80%는 외부에서 빌리면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다보니 30대그룹의 부채비율이 4백%를 훌쩍 넘어서고 있고 이제와서 기업들 대부분이 경영애로점으로 금융비용을 우선적으로 지목하고 있다. 주요 경쟁대상인 미국(부채비율 1백50-1백80%)과 일본기업( " 2백50%선)에 힘이 부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부채비율이 1백% 내외인 대만과는 아예 상대가 안된다. 부채비율이 3백50-4백%를 오가는 한 그룹관계자의 "이 정도 재무구조는 괜찮은 편 아니냐"는 반문이 우리 기업이 변해야할 정도의 폭을 말해 주고있다. 그러나 차입경영은 곧 도태를 의미한다는 얘기가 기업내부 곳곳에서 나오고있다. 최근들어 재무구조개선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이를 뒤늦게나마 깨달은탓이다. 특히 IMF가 국내 금융구조를 바꾸면서 부실채권회수및 대출억제에 나설 경우 외부차입에 의존한 기업은 더 이상 버틸수 없게 된다는 지적이다. 사업구조조정도 빚경영 청산에 뛰따라야할 필수항목이다. 종전에는 벌여 놓은 비수익사업을 빚으로 유지할수 있었으나 이제 달라졌기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자체 생존을 위해 엄격한 여신심사를 거치고 불확실한 사업에대해서는 대출을 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특화된 수익사업으로 경영자원을 집중시켜야 한다. 현재 기업들이 너나없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으나 미온적이고 위기를 일시적으로 넘기기 위한 임시방편식이 많다는 지적이 있다. 다른 기업들에 비해 훨씬 앞선 2년전에 구조조정을 마침으로써 올해의 위기를 큰 무리없이 지나간 두산의 경우는 좋은 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속성장시대 대기업경영의 단골메뉴였던 문어발식 사업확장도 당연한 척결 대상이다. 앞으로 다가올 저성장시대의 경영핵심은 매출액 경쟁이 아니라 수익성 경쟁이라고 재계에서는 입을 모은다. 실제로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 대부분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무리한 사업확장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 확장과정에서 이젠 부담스럽기만한 짐이 되어 버린 부동산확보에 열을 올리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이다. 재계 기획담당자들은 "연간 경제성장률이 4% 내외의 저성장경제에서는 제법 구미가 당기는 사업이더라도 수익발생시점이 길 경우에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ANZ은행은 최근 한국의 금융위기가 경쟁력있는 분야에 배분돼야할 자원이 일부 대기업들의 사업확장자금으로 몰린데 기인하고 있다는 분석을내놓고 있다. 이와함께 경영의 투명성도 구제금융 시대에서 빼놓을수 없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부도를 내거나 경영난을 겪고있는 기업의 상당수가 하찮은 악성루머에 시달리고 있다. 기업이 소문이 거짓이라고 해왔자 투자자는 루머에 더 신뢰하는게 현실이다. 자연히 주가는 떨어지고 자금조달에도 애를 먹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누구라고 신뢰할수 있는 경영을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여기에 골프구경꾼을 빗대 나올던 직장인들의 "갤러리맨" 의식을 하루빨리불식시킬수 있도록 기업은 미래비전을, 직장인들은 다시 시작한다는 도전의식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과감한 자기수술을 통해서만이 그동안 금융권의 지원 등 영양제에 의존했던 기업의 허약체질을 웬만한 외풍에는 끄떡없는 무쇠체질로 바꿔나갈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