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구본영 <OECD 대사>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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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호랑이(tiger)에서 아시아 거지(beggar)로''. 한국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키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일부 극단적인 외신이 보인 반응이다. 국민들의 자존심이 형편없이 구겨졌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신용공황상태에 빠진 한국경제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는시각도 만만치 않다. 분명 경제는 ''뜨거운 가슴''으로 다뤄야 할 구석도 없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경우 ''냉철한 이성''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는 게 구본영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의 지론이다. 자존심만을 내세울 수 있는 입장에 있지 못하다는게 우리의 현실이라는견해다. 상황인식은 그렇다. 그러나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에 가입한지 1년도 채 안된 시점의 일이라국민들의 좌절감이 극에 달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OECD 초대대사로 부임하자마자 영일이 없이 1년을 보낸 구본영 대사를 본지 양봉진 부국장대우가 파리 OECD본부 사무실에서 만나보았다.======================================================================= -한국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기로 했는데. 구대사 =일부 언론 등 여론은 한국경제가 IMF 등 국제기구, 특히 미국이나 일본세력에 종속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비판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지만 제 견해는 조금 다릅니다. IMF 구제금융을 수용함으로써 우리가 그동안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던 개혁의 고삐를 스스로 더 다그칠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기존에 견고하게 형성된 사고의 틀과 제도를 하루아침에 스스로의 자발적 의지로 깬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주변의 압력(Peer pressure)을 역이용하여 국제사회의 빠른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우리의 주변을 제대로 바꿀 수 있다면 이번 사태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정부는 그동안 IMF 자금신청 불가론을 위시하여 멕시코와의 차별성 등을 들어가며 큰 소리를 쳐오다 급기야는 태도를 바꾸기에 이르렀습니다. 정부의 접근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까. 구대사 =우리나라와 같이 5년 단임제 대통령제하에서 마지막 1년 내지 2년은 국정을 끌고 가기가 무척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대통령의 가족이 구속되는 불행한 사태 등 과거 1년동안 빚어진 여러가지 일들을 고려해볼 때 이번 결정은 정치적으로 부담이 매우 컸으리라 봅니다. -우리나라의 대외부채 구조가 단기자금위주로 이루어져 있는 점을 감안할때 정부가 제시한 2백억달러 정도의 규모로는 어림없다는 얘기들이 많은데. 구대사 =2백억달러라는 숫자는 정부가 언론에 브리핑하는 과정에서 와전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장 보수적인 수치와 또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 사이에는 편차가 있을수 있습니다. 현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규모가 적정한 수치인지는 좀더 실사를 해봐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정부 실무자와 IMF와의 실무협상과정에서 그 규모가 조정될 것으로 봅니다. -협상이라는 말속에는 IMF가 우리에게 요구할 것이 많다는 의미를 내포하고있고 국민들은 바로 그 점을 우려하고 있는데. 구대사 =물론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자금자체에 대한 조건보다는 IMF가 여타 경제문제에도 시시콜콜 간섭하지 않겠느냐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IMF가 진정으로 바라는 바는 한국경제의 정상궤도 재진입입니다. 한국이 잘 돼야 IMF로서도 우리에게 빌려준 돈을 확실하게 받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국경제가 어떻게 체질변화를 해야할 것인가 하는 점 등에 대해 조언하려 들 것입니다. 우리를 좋지 않은 방향으로 끌고가고자 하려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구도 간섭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IMF의 조언을 무조건 나쁘다거나, 우리경제의 외세종속으로 해석하는 것은 사물을 너무 경직되게 보는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제금융으로 신용공황 상태에서 빠져나온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안고 있는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등 산업구조적인 취약성 때문에 한국경제를 낙관할 수 없다는 분석도 많은것 같습니다. 구대사 =그런 의미에서도 이번 구제금융요청 사태는 매우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보 진로 대농 기아사태를 겪으면서 대기업들도 세상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자각하게 됐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구제금융요청 사태가 OECD에 가입한지 1년도 채 안된 시점에 발생했습니다 국민들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OECD가입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은데. 구대사 =OECD는 원래 유럽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유럽사람들의 모임에 미국과 일본이 나중에 끼어든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는 해방이후 미국과 일본에 편향된 분위기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의 대부분이 미국대학에서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유럽의 사고와 문화 정치 그리고 경제를 모르고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지구촌이 하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유럽을 모르고는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OECD에 가입해 선진국의 일원으로 행세하게 됐다는 외형적인 면보다는 유럽사람들과 한덩어리가 되어 어울릴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우리가 얻은 OECD가입의 가장 큰 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년간의 구체적인 성과라면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구대사 =우리들은 OECD 멤버들과 거의 매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모르던 유럽사람들에게 우리를 인식시킨다는 것 자체는 큰 성과입니다. 세미나 강의 토론회 자료교환 등 상호의 관심사가 끊임없이 교환되고 있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한국이 2000년에 개최하게 되어있는 ASEM회의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ASEM이 개최되면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 독일의 콜 총리, 그리고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등 기라성같은 유럽의 정상들이 서울이라는 무대에 모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1세기에 한번이나 가질 수 있을까 말까한 아주 중요한 행사가 될 것입니다. 본 회의가 개최되기전 2년동안 전초 행사로 유럽각국의 교향악단방문 예술단공연 미술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교류를 갖자고 제의하는 곳도 많습니다. -다자간투자협정(MAI)은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구대사 =그 문제 또한 가장 중요한 이슈중 하나입니다. 한국사태와 관련, MAI는 그 중요성과 관심이 더욱 증폭되고 있습니다. IMF사태와는 별도로 OECD자체 계획에 따라 MAI와 관련, 한국실무진과 OECD는 끊임없는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뇌물-환경 라운드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뇌물방지와 관련, 한국의 관료들이 OECD를 방문해 논의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정부의 채권시장 조기개방에 대한 반응은 어떤지요. 구대사 =한국시장의 투자대상으로서의 매력이 많이 상실된 상황이기 때문에 이곳 언론들의 평가는 덤덤한 상태이지만 그 자체로서 보다 개방적인 대세를 따라가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적지 않습니다. -OECD가입 이후 한국에서의 끊임없는 뇌물사건 등 불미스러운 보도로 OECD 내에서는 한국이 마치 미운 오리새끼로 취급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리더군요. 구대사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OECD멤버들은 한국의 사회 경제적인 발전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의 저력을 믿고 있으며 특히 각종 외신을 타고 전해지는 한국의 뇌물사건 등도 발전과정의 진통쯤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IMF 구제자금신청이라는 국가적 수모에도 불구하고 OECD가입 1년이 긍정적이었다는 뜻입니까. 구대사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난 40년간 "바쁜 꿀벌은 근심할 새도 없다"는 말을 실감하고 살았습니다. 나는 이번 한국의 사태가 보다 희망적인 내일을 위해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대범하게 보면 근심하는 때도 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OECD 주변의 멤버 동료들 또한 모두 나의 견해에 동감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