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금융사기사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을 속임으로써 본인 또는 제3자가 재산상의 이익을 얻으려는 사기사건은 끊임없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얘기가 우스갯소리로 전해올 정도다. 특히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신용을 바탕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현대사회에서는 불특정 다수가 큰 피해를 보는 금융사기의 예방이 절실한 실정이다. 금융사기사건은 대개 금융산업의 발달이 뒤떨어져 있고 정경유착으로 각종 금융비리가 많은 후진국에서 자주 일어나는데 과거에 계가 깨지는 소동이 자주 있었던 우리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다가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수출신용장 위조, 가짜 유가증권 유통,불법대출 등 보다 조직적인 금융사기사건이 일어났다. 최근 수출대금 횡령 및 어음사취, 주가조작, 허위공개매수신청 등 각종 사기수법을 총동원해 3천7백억원을 빼돌린 대형금융사기사건이 다시 터졌다. 주범 변인호를 비롯한 이들 일당은 유령회사를 차려 수출하는 척하며 신용장을 개설한뒤 은행에서 "네고"대금을 횡령하고,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들로부터 융통어음을 할인해주겠다며 이를 가로챘고 주가조작을 일삼다가 끝내는 상장기업을 인수하겠다며 허위로 공개매수까지 신청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과거에도 수많은 금융사기사건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예로 70년대의 박영복 부정대출사건과 80년대의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사건을 들 수 있다. 둘다 당시로서는 최대규모의 금융사고로서 국민경제의 안정을 뒤흔들었다. 특히 박영복사건은 예금유치에 급급한 금융기관 및 수출실적증대에 눈 먼 무역업체를 이용해 지능적으로 사기를 쳤고 은행감독원 등 금융감독기관들이 속수무책으로 방관했다는 점에서 이번 금융사기사건과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금융사고의 예방을 위해서는 합리적인 금융제도, 투명한 경영내용, 신속한 정보공개 및 유통, 엄격하고 성실한 금융감독 등이 필요한데 21세기를 바라보는 지금도 25년전과 비슷한 금융사기 사건이 일어났으니 그동안 금융개혁을외쳐왔던 금융당국과 금융기관 종사자들은 무엇을 했는지 한심한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