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진단] '76년 영국-IMF 구제금융협상 비화'

지난 76년 선진국중 처음으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영국. 외부에 구걸해야 하는 불명예보다 더욱 치욕적인 사건은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영국은 재정.금융정책에 대한 주권을 포기해야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마크 하먼 교수는 얼마전 영국에서 발간한 저서 "영국 노동당 정부와 IMF 위기 (1976년)"에서 구제금융 조건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영국과 IMF간의 치열한 협상과정을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IMF는 어떻게 요구사항을 관철시켰으며 영국은 양보할수 밖에 없었던 당시 협상 진행과정은 IMF는 어떻게 요구사항을 관철시켰으며 영국은 양보할수 밖에 없었던 당시 협상 진행과정은 IMF와의 협상을 앞두고 있는 우리 정부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 위기상황 = 1차 오일쇼크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74년에 집권한 영국 노동당 정부는 사회 보장제의 확대 등을 위해 정부공공지출을 확대함으로써 76년 하반기부터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76년초 OECD로부터 53억달러 상당의 스탠바이 차관을 지원받았음에도 파운드화는 더욱 가파르게 하락을 거듭했다. 3월 파운드당 2달러를 웃돌던 파운드화 가치는 9월27일에 영국중앙은행의 방어선이던 1.77달러아래로 떨어졌다. 당시 중앙은행은 외환보유고마저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이틀후인 29일 캘러한총리는 일부 내각의 반대를 무릅쓰고 마침내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대영제국이 겪게되는 수모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IMF와의 싸움 = IMF와의 구제금융 협상은 영국 정부가 요청을발표한지 한달 보름이 지난 11월 중순에 개시됐다. IMF측은 스탠바이 차관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영국 정부의 경제정책이 개선돼야 한다"며 공공지출의 대폭적인 삭감을 요구했다. 77년에 15억파운드, 78년에 20억파운드 등 2년간 35억파운드를 줄이라는 것이었다. 이에대한 영국의 답변은 한마디로 "노"였다. 공공지출을 줄이면 실업률이 증가하고 세수가 감소한다는 이유였다. 협상이 난항에 부닥치자 영국은 공공지출을 소폭 삭감하는 내용의 "히든 카드"를 제시했다. 77년에 10억파운드, 78년에는 국영석유회사인 BP지분 매각을 통한 5억파운드자금을 포함한 15억파운드를 삭감하겠다는 타협안이었다. 한편으로 영국 정부는 독일과 미국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미국과 독일은 "IMF와 협상이 우선 선결돼야 한다"며 거절했다. 영국의 이중 플레이에 화가 난 비테벤IMF총재는 "영국에 절대 양보하지 말것"을 협상대표단에 지시했다. 사실 캘러한영국총리는 당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강경한 노조와 영국 기업들의 주장 (공공지출 삭감 반대)을 들어 주자지 구제금융을 받지 못할게 뻔하고 IMF 주장을 받아들이면 이들 단체로부터 강력한 저항을 받게 되는 오갈데 없는 처지였다. 백기 든 영국 = 12월1일 IMF 총재가 최종 담판을 위해 영국을 방문하면서 협상은 막바지에 이르게 된다. 영국 정부는 "만약 IMF가 자신들의 요구를 끝까지 고집한다면 우리는 국민들의 심판을 받기 위해 총선도 불사하겠다"는 최후의 저항태세를 보였다. 영국은 IMF가 공공지출부문 요구를 일부 양보함으로써 2년간 25억파운드를삭감하는 성과를 얻긴 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재정.금융 주권을 사실상 IMF에 양도하는 뼈아픈 치욕을 감수해야 했다. 그 배경에는 영국을 "사치스런 정부"로 비난한 IMF와 미국 재무장관 독일 분데스방크총재 등 강경론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영국의 경제정책은 IMF 감시하에 미국이 막후에서 조정 관리자 역할을 맡는 "신탁통치" 형태를 2년간 지속하게 된 것이다. 그 후유증으로 노동당정부는 79년 5월 총선에서 지지세력이었던 노동조합과 민심의 반란으로 참패해 보수당에 정권을 넘겨줄수 밖에 없게 된 셈이다. 76년 9월27일 : 영란은행 파운드화 방어선(1.77달러) 붕괴 29일 : 영국정부 IMF 구제금융요청 공식발표 11월19일 : 영국.IMF 협상 개시 IMF : 공공지출 대폭 삭감요구 영국 : 실업률 증가이유로 거부 영국 : 미국 독일에 지원요청 미국.독일 : IMF 협상 선결조건이유로 거절 12월 1일 : 영국총리.IMF총재 최종협상 15일 : 영국 의향서제출 (IMF 합의사항) 39억달러규모 구제금융신청 공공지출 2년간 25억파운드 삭감 국내여신한도 축소 77년 1월 : G10 중앙은행, 파운드화 안정위해 30억달러 지원키로 합의 .예산/통화정책 : IMF - 수정 요구 영국 - 수정 불필요 결과 - IMF 감시하에 미국이 막후서 조정 .공공지출 : IMF - 2년간 35억파운드 삭감 요구 영국 - 25억파운드 결과 - 삭감규모 25억파운드 .국내 총여신한도 : IMF - 2년간 18억파운드 감축 요구 영국 - --- 결과 - 18억파운드 감축 .총통화량(M3) 증가율 : IMF - 10%로 억제 영국 - 11.8% 결과 - 10%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