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IMF구제금융과 노동시장..김재원 <한양대 교수>

김재원 다른 나라의 선례를 볼때 IMF의 구제금융은 우리경제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재정긴축하의 저성장과 시장개방이 가속화될 것이다. 세율 인상으로 민간소비의 위축이 전망된다. 물가는 안정이 기대되나 기업의 투자심리가 얼어붙을 것이다. 이러한 거시경제 운용상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노동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우선 실업의 증대가 예상된다. 고용감소는 세가지 경로를 통해, 그리고 이들의 복합적 요인에 따라 진행될 것이다. 또 경우에 따라선 예상 외의 큰 폭으로 진전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세가지 경로는 우선 실질성장률의 감소에 따르는 고용감축을 들수 있다. 둘째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으로 해서 야기되는 영향,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업의 투자위축과 경제위기에서 기업이 살아 남기 위한 자구노력 강화에 따른 효과(심리적 요인)등이 그것이다. 경제위기하에서 노동공급이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예견된다. 경기침체에 따른 가장의 실직 또는 근로시간의 감축에 따라 부인이나 자녀가 가장의 소득 상실분을 보전받기 위해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부가노동자 효과"가 경기침체로 구직의 가능성이 적음을 인지하여 부차가족구성원(부인이나 자녀)의 노동공급을 오히려 제한하는 "실망노동자효과"보다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런 현상은 두가지 개연성을 시사한다. 첫째는 경기 침체로 노동수요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노동공급이 늘어남에 따라 임금이 안정되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개인의 근로소득은 늘어나지 않으나 가계의 소득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둘째는 이러한 현상이 실업의 증대만 초래할 개연성도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이 실물경제의 여건 변화에 어느정도 순응할 능력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지금까지 매우 경직적이어서 생산물시장의 변화에 탄력적이지 못하였고, 그 결과 임금(가격)조정이나 고용(물량)조정 보다는 연장근로시간에 의한 조정이 주류를 이루었다. 임금의 하방경직성은 보편적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는 경제현상이나 최근 선진국들의 동향을 보면 이런 행태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일본이나 독일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하락한 예가 이에 속한다. 이러한 추세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향후 우리나라에도 적용되리라고 보여진다. 최근 미국의 한 연구기관은 한국의 발표된 실업률은 2%대이지만 외국과의 경쟁에서 이미 경쟁력을 상실했으면서도 국내시장의 보호장벽 때문에 밖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실업률(유보 실업률)은 9%대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이는 한국경제가 전면 시장개방했을 경우를 상정한 실업률이라고 볼수 있다. 이에 덧붙여 성장 구조조정, 그리고 심리적 요인에 따르는 실업증가 요인을고려하면 향후 임금이 안정되더라도 10%수준의 실업이 예상된다. 또한 만약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고용이나 임금조정이 탄력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 기업의 도산에 의한 실업증가가 더 큰 규모로 이루어질 개연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총체적 경제위기에 당면한 현실에서 노사는 고통분담을 하는 이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정부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호혜적인 투자환경을 조성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국경없는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실물경제의 경쟁력도 중요하나이번 금융-외환 위기에서 보듯이 호혜적인 투자환경을 지니지 못하면 세계의 어느 경제도 살아남을수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앞으로 무역수지와 경상수지가 급속도로 개선되더라도 우리경제의 위기는 지속될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 막대한 규모의 외채를 지니고 있는 부문(특정 공기업등)에서 향후 수출이 크게 증대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국내 투자여건이 개선되지 않는 한 수출의 큰 몫을 담당하는 대기업들은 해외투자를 선호할 것이고 외국 자본의 국내 유입을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한국경제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 현재 우리정부가 해야할 가장 큰 과제는국민들에게 한국경제가 침몰하게 된 이유와 우리경제의 어려움의 정도를가식없이 밝히고 경제회복을 위해 경제주체들이 고통을 분담할 것을 설득하고이해시키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앞장서 "내 탓이오"라는 자각과 솔선수범하여 경제를 살리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