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마음의 눈으로 .. 이광희 <패션디자이너>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을 할 때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는지 무척 궁금해 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든지 디자인의 모티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냥 보아서는 보이지 않고, 영감을 얻기는 더더욱 힘든 것 같다. 나는 디자인에 앞서 보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고,작업에 착수하기 전에 많은 시간을 거기에 소요한다. 그런 후에야 마음의 눈을 통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고 새로운 디자인을구상하고 싶은 의욕도 생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제대로 보는 것이라고 한다. 마음의 눈이 깨어 있지 못하면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쉽지 않다. 깨우치지 못한 사람의 눈에는 산은 산으로 보이고 물은 물로만 보인단다. 깨우침을 찾는 사람에겐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란다. 깨우침을 얻게 되면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보인다는 에리히 프롬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기에 똑같은 사물을 두고도 달리 받아들인다. 곧은 막대도 물 속에서는 굽어보인다. 물이라는 매체가 막대를 굴절시키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것들도 내 사고의 틀과 마음에 따라 변형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바로 잡지 않으면 제대로 보지 못한다. 맑고 투명한 마음을 통해서만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맑고 투명한 마음이 그냥 얻어지지는 않는다. 살아오면서 구겨진 마음들을 가다듬고, 겹겹이 쌓인 앙금과 편견들을 털어내는 고된 작업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이 쉽지 않은 작업 뒤에 정제된 마음과 순수한 눈을 다시 가질 수 있다면,산은 산 그자체의 아름다움으로 또한 물은 물 그대로의 투명함으로 가식없이 다가오리라. 그렇게 해서 만나지는 아름다움들이 내 이미지의 세계에서 내 손끝을 통해 소박하면서도 우아하게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