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4일자) 치욕적인 IMF 차관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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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으로 예정돼있던 임창열 부총리와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총재간서명식이 또 연기된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정말 착잡한 느낌이다. 2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주재로 열렸던 국무회의가 1일밤의 합의문에 대한 캉드쉬 총재의 이의제기로 10분만에 끝나는 해프닝을 연출한데 이어 3일의 상황이 또 빚어졌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도대체 "협상"을 어떻게 해나가길래 이 모양인지, IMF와 우리 정부간 협상에 실질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이 확실한 미국의 진의가 무엇인지 우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가 보기에는 금융시장개방 예산절감 금융기관정리 등으로 들어줄 것은 다 들어준 것 같은데, 합의문을 마련했다가 IMF측 이의제기로 재협상이 되풀이되는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IMF자금이 들어와 하루빨리 금융시장이 정상화되기를 목매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기업들 입장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믿는다. 이번 협상은 그 성격이 통상적인 대외 협상과는 판이하다. 기본적으로 대등한 위치에서 교섭을 벌일수 있는 여건도 아니고, IMF차관 이외의 대안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 IMF로부터 긴급 구제금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더할수 없는 치욕이지만, 그것이 피할수 없는 엄연한 현실인 이상 협상과정도 국민들이 모두 알아야 한다. 그동안 누적된 우리들의 과오를 반성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점에서 앞날을 위해서도 국민 모두가 냉혹한 국제경제 현실을 알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측면에서 그러하다. 우리는 IMF측이 제기한 "이의"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며, 추가된 "요구"로 득을 보는 당사자가 누구인지도 알아야 할 필요를 느낀다. 한국이 IMF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도록 미국이 압력을 행사했다는 외국언론의보도가 있었지만, 우리는 미국의 "동기"는 순수했으리라고 믿고 싶었다. 한국의 금융시장이 무너지고 그 영향이 일본으로 번지면 결국 미국도 영향권을 벗어나기 어려우리란 판단에서 우리 정부에 충고하고 종용했을 것으로 해석해왔다. 그러나 최근 2, 3일간 빚어지고 있는 상황은 그런 우리의 해석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잘못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과연 IMF, 더 정확히 말해서 미국의 진의는 무엇인가. 국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서도 긴요한 한국금융시장의 안정을 지원하면서 구조적인 모순도 제거하도록 요구하는 선량한 친구인지, 아니면 차제에 안방까지 다 빼앗겠다는 악랄한 고리대금업자인지 판단이 가지 않는다. 외국인의 국내은행인수를 금년중으로 허용하라는 IMF측 추가요구가 미국의 영향력에 따른 것이란 해석은 일반적이다. 내용도 그렇지만 그 요구형식이 철저히 우리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것이라는점에서 두고두고 잊지말아야 할 필요가 있다. 빚진 죄인, 교섭능력도 없는 우리 스스로의 참모습을 함께 되새기면서 모두 생각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