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반발' .. IMF 재벌해체 요구설

미셸 캉드쉬 IMF(국제통화기금)총재가 "재벌해체론"을 언급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재계가 흥분하고 있다. 캉드쉬총재가 그런 말을 했다면 명백한 월권이자 IMF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고, 잘못 전해진 것이라면 정부가 IMF를 등에 업고 "기업 책임론"을 부추기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어서다. 3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재계에 따르면 경제단체들과 각 그룹들은 캉드쉬 총재의 발언내용이 사실이라면 경영구조에 중대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판단,진의 파악에 나서는 동시에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후속조치의 내용과 수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캉드쉬가 재벌해체를 정말 주장했다면 =전경련 관계자는 재계 차원에서 IMF와 논리대결을 벌이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즉 국제통화의 안정을 목표로 삼고 자유변동환율제도를 주장하며 자유시장경제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IMF가 한 나라의 민간기업 경영구조를 문제삼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을 지적하겠다는 것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런 모순에도 불구하고 IMF가 한국의 대기업그룹을 겨냥하고 있다면 그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IMF가 관례를 깨고 한국형 경영구조의 전면 수술을 요구한다면 이는 미국 일본 등의 입김에 좌우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재무부와 일본 대장성 관계자들은 최근 극비리에 방한해 우리 정부와 IMF와의 실무협상에 깊숙히 개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미국의 경우는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한국이 경쟁력을 키워온 산업분야에 자국의 입장을 반영했고 일본은 수입선다변화 해제를 1년간 앞당기는 "전과"을 올렸다는 것이 재계의 판단인 셈이다. 또 월스트리트저널도 이날 미국의 전자업체들이 미국정부에 IMF구제금융이 한국의 경쟁사에 흘러들어가면 절대 안된다고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해 이같은 재계의 판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캉드쉬의 발언이 와전됐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발언내용이 확실치 않은데도 정부가 앞장서 국내 대기업의 폐해를 지적하고 지배구조개선 약속을 내놓았다면 이는 명백한 "희생양만들기"라는것이다. 모그룹 관계자는 캉드쉬가 3일 국제노조연맹 총회연설을 통해 "한국 정책당국이 상황을 너무 오래 질질 끌어 경제구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한 사실을 들며 "정말 책임질 쪽이 엉뚱하게 남을 탓하고 있다"고 정부를겨냥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은 누가 경제위기를 초래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빨리 극복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며 "정부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캉드쉬가 그런 얘기를 했다면 대기업에 여신이 집중되는 금융시스템과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는 요지였을 것"이라며 "경제정책의 우선 순위는 무엇보다 금융시장의 안정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경련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 대기업그룹에 상호지급보증해소와 결합재무제표 등을 요구하는 것은 암환자에게 보약을 먹이려하는 것과 같다"며 "아직도 대기업정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정부가 IMF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호가호위)하는 형국"이라고 비난했다. 재계의 대책 =이날 오후 4시에 열린 전경련 30대그룹 기조실장회의와 6시에 개최된 경총 긴급회장단회의에서도 "재벌해체론"에 대한 성토가 많았다. 특히 "경상수지 적자폭을 줄이고 빨리 달러를 확보해 빚을 빨리 갚는 노력을 해야하는 마당에 이런 논쟁으로 시간을 소모할 이유가 뭐냐"는 불만이 발언의 주종을 이뤘다. 일부에서는 캉드쉬 총재의 발언을 빌미로 신대기업정책을 밀어붙이려는 정부에 먼저 공무원수 줄이기 조직대폭 축소 규제철폐 등 구조조정조치를 요구하자는 강경론도 나왔다. 재계는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해서는 큰 목소리를 내지 않기로 했다. 다만 지금은 "네탓이오"로 책임을 넘길 떠넘기고 앉아있을 시기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