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파일] (우리가 마니아) 삼성그룹 '미래영상연구회'

"하루도 영화를 얘기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사람들" 삼성그룹내 영화동아리 "미래영상연구회" 회원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이 영화에 쏟는 관심은 이미 취미생활 수준을 뛰어 넘었다. 미디어와 통신 영상등이 결합되는 미래사회를 준비하기 위한 몸만들기로 영화를 대하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영화산업의 틈새를 치고나가는 벤처사업도 시작한다는 태세다. 그래서 내친 김에 한 번 사고를 치기로 작정했다. 영화를 보고 평하는 데 머물지 않고 직접 감독 배우가 돼 영화를 만들기로한 것이다. 지난 10월 5일 크랭크 인에 들어간 영화의 제목은 "네트워크 제로". 30분짜리 단편영화라서 지난달에 촬영이 끝나고 편집 현상 등 마무리작업만 남은 상태다. 이 영화는 6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옴니버스식 작품이다. 1997년 서울에서 벌어지는 20대 남녀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우연성과 가벼움으로 가득찬 세태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네트워크"는 인간관계를 뜻하고 "제로"는 이런 인간관계가 무상하기도 하면서 원처럼 돌고 도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회원들만의 힘으로 대부분의 제작과정이 완성됐다는 점도 넘치는 의욕을 느낄수 있는 대목이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시나리오를 만들었으며 삼성물산의 이태신씨,삼성영상사업단의 진용복씨, 제일기획의 최인규씨 등이 2~3편씩 감독을 맡았다. 배우도 6명중 5명이 회원이다. 그래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잘못 찍어 버린 필름도 많았고, 연기가 어색해 서로 쳐다보며 배꼽을 잡은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막상 시작해 보니 "시나리오를 고쳐야 한다, 아니다, 그대로 가야 한다"는 식의 의견충돌이 많았습니다. 앞으로 편집과 녹음작업에서도 계속 싸울 것같습니다. 영화만드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영화를 제작한 만큼 이런 싸움이 소중한 경험으로 남겠지요".(이태신씨) 미래영상연구회는 지난해 4월 삼성물산내 관심분야연구회중 하나로 출발했다. 그러던 것이 그룹 관계사에 점차 알려지면서 삼성전자 삼성영상사업단 제일기획 삼성SDS 등에 근무하는 사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현재 회원은 60여명. 매달 한차례씩 영화감상회와 세미나를 갖는다. 감상하는 영화도 국내에서 쉽게 구할수 없는 것들이 주종을 이루고 세미나의 주제도 "97년 한국영화 현황" 등 상당히 학구적이다. 회원으로 들어왔다가 영화에 매료돼 영화기획사 미디어업체 등으로 아예 직장을 바꾼 사람, 다시 대학에 들어가 영상관련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그동안 4명이나 된다. 취미생활이 본업이 돼버린 꼴이다. 미래 영상연구회를 비롯 동아리이지만 "프로의 길"을 추구하는 모임인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