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납 불고기판

납은 기원전 1500년께부터 인류가 사용해 왔다. 그 흔적이 고대아시리아의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고대중국에서는 황금(금) 백금(은) 흑금(철) 적금(구리) 청금(납) 등 5색금중의 하나로 꼽혔다. 고대로마인들은 연간 2백10만t의 납을 캐냈다. 이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양과 비슷하다. 그 대부분은 포에니전쟁때 정복한 스페인의 많은 광산들로부터 조달된 것이었다. 당시 납은 상수도파이프 식기 조각품 등을 만들어 일상생활에 사용되었는가하면 상류계층 여인들의 화장품 안료나 의약품 등의 화합물로 이용되었다. 그 결과 고대로마의 상류계층 유골에서는 납 농도가 높게 나타난 조사 통계가 발표된 적이 있었다. 그로 미루어 로마제국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이 상류계층의 납 중독 만연으로 그 수가 급속히 줄어들어 제국문화의 전통과 지배계층의 권위가 쇠퇴한데 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국내에 들어오면서 납 중독 사례는 매우 다양해 졌다. 납 성분 물질을 다루는 공장의 근로자들에게 직업병으로 나타나고 납 성분이 함유된 장난감을 빨아먹는 어린이에게 성장장애를 가져오는가하면자동차 배기가스에 들어있는 납에 의한 대기오염으로 도시생활자들이 중독증에 걸린다. 또 납을 유약으로 사용하는 범랑이나 옹기, 납 성분을 넣은 금속성 식기등의 불량품에서 납이 음식물로 옮겨져 중독증을 일으킨다. 납중독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된다. 초기에는 피로 두통 빈혈 불면증 신경과민 식욕부진 구토 근육통 관절통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더 진전되면 경련을 일으키고 종래에는 혼수상태에 빠져 죽음에 이르른다. 이처럼 가공할 치명상을 주는 납성분이 전국 음식점과 상점에서 수거한 주물럭 고기구이판에서 허용기준치(1PPM이하)의 1.6~5백57배나 검출되었다는 소비자보호원의 발표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더우기 거리마다 널려 있는 고기구이집을 자주 찾는 육식애호가들에게는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국민건강을 아랑곳하지 않고 불량제품을 시판한 관련업계에 그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그에 앞서 감독 당국의 직무유기 여부도 가려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