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 루머 멀쩡한 기업 잡는다' .. 익명성 악용

"굴지의 S기업이 1차 부도났다는 사실이 홍콩 언론에 보도됐다" 최근 한 PC통신의 게시판에는 이같은 허위사실이 올랐다. "S기업 부도설"은 순식간에 조회수 1천건을 돌파했다. 또 네티즌들의 입을 건너면서 사실처럼 포장돼 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여의도 증권가는 물론 이 회사 직원들조차 진위파악에 열을 올리는데는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급기야 검찰이 "얼굴없는 진원지"의 수사에 나서 친구의 ID(이용자 식별번호)를 도용, 부도설을 퍼뜨린 H대 경영대학원생 하모(24)씨를 신용훼손혐의로 구속했다. 또 검찰은 하씨에게 부도설을 전달한 혐의로 금융계 종사자 2명을 추가 소환, 정확한 루머의 진원지 색출에 나서는 한편 정보통신부에 협조를 의뢰,PC통신회사들이 기업부도 관련 유언비어 통신문을 즉각 삭제토록 요청했다. "PC통신의 기업부도 루머가 위험수위에 올랐다" 최근 경제위기 사태와 맞물려 "S그룹 3년내 부도난다" "H사 위장부도" 등 기업부도관련 루머가 PC 통신망에 난무하며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같은 루머 가운데는 공식적인 경로로는 유통이 차단된 "사실"이 들어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일단 PC통신에서 부도설이 퍼지면 해당기업의 신뢰도에 치명타를 가하는 것은 물론 기업의 자금숨통을 막아 실제 부도를 생산해 낼 가능성이 있어 근절이 시급하다. 특히 PC통신망을 통해 취득한 유언비어는 각 기업체 정보담당자의 정보교류모임에서 유포, 확대 재생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검찰은 최근 대기업 부도설에 대한 진원지 추적 과정에서 일부 기업에 대한 음해성 루머를 외국계 금융회사와 경쟁기업 및 증권사들이 조직적으로 유포한 혐의가 포착됐다고 밝혀 충격을 던졌다. 이같은 현상은 PC통신이 속보성을 갖춘 제5의 매체로 부상하면서 그 순기능과 함께 역기능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PC통신의 익명성과 개방성은 사회적 편견과 거리감을 넘어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반면 의사소통의 신뢰와 책임은 공유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낳기 때문이다. 국내 PC통신은 유료가입자 3백만명을 끌어모으며 강력한 여론 형성 능력을 갖춘 차세대 미디어로 떠올랐다. 최근 괌 KAL기 추락사건과 가요계 표절시비에서 PC통신은 방송이나 신문 못지않은 속보성과 영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상공간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유포되는 기업관련 루머는 시장질서와 경쟁원리를 파괴하는 암적 존재로 떠오르면서 PC통신의 새로운 부작용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따라 최근 통신망에는 이를 근절해야 한다는 자정의 목소리가 높아가고있다. 일부 통신 이용자들은 "예전같으면 콧방귀나 뀔 일부 대기업의 부도설이 요즘은 사실처럼 들리기도 한다"며 모두 어려운 시기인만큼 통신인 스스로 올바른 소양을 갖춰 기업루머 근절에 앞장설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하이텔 프라자를 운영하는 이경희 대리는 "가상공간은 실제사회를 반영하는거울"이라며 "이번 일을 통신인들의 일방적인 책임으로 몰고 가기 보다는 고객과 기업이 진정한 신뢰관계를 쌓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