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촛불 .. 이광희 <패션디자이너>

어린 시절의 성탄절이 떠오릅니다. 낡고 초라한 예배당은 돌연 동화속의 집처럼 곱고 화려한 치장을 뽐내며 섰고, 아기 천사와 방울 그리고 온갖 종이 색등으로 장식한 성탄목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런 밤에는 동방박사와 아기 예수의 연극이 있었고,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선물도 받았으며, 마지막엔 촛불 예배로 우리의 마음을 훈훈히 녹였던 기억이 납니다. 경건함과 설렘 속에 옆에서 옆으로 댕겨지던 촛불, 그것은 아련한 추억입니다. 마음이 힘들 때면 나는 촛불을 켜놓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그러면 내 마음에도 촛불이 밝혀지고, 불꽃이 주는 고요함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깁니다. 촛불과 함께 하는 동안은, 그 작은 불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됩니다. 촛불은 내게 늘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 은은한 불꽃에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힘이 있어, 피곤한 나의 영혼에 평온함을 가져다줍니다. 속으로 애태우며 혼자 조용히 타오르는 불꽃은 나에게 의연함을 보여줍니다. 작은 입김에도 꺼질듯 흔들리다가 다시 곧바로 서는 불꽃을 보면서 나는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수줍게 타오르는 그 불꽃은, 내게 사람들을 부드럽게 대할수 있는 온유함을 가르쳐줍니다. 조금만 크게 말해도, 조금만 화를 내도 금세 꺼질 것 같은 촛불 앞에서 나는 조심스러움도 배웁니다. 이 작은 불꽃을 꺼트려서는 안되는 생각에, 어렵고 힘든 하루하루를 견디는 인내가 생깁니다. 이번 성탄절은 왠지 추운 것 같습니다. 촛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따스해 집니다. 그래서 나의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촛불을 하나씩 건네주고 싶습니다. 사람이 불 앞에서는 잠을 자지만, 촛불의 불꽃 앞에서는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합니다. 촛불은 지난 일을 그을음 속에 불태우고, 마음의 꿈을 한껏 일깨우도록 해줍니다. 우리의 소중한 꿈들을 다시 펼칠수 있도록 작은 촛불 하나씩을 마음속에 간직하셨으면 합니다. 좋은 성탄절이 되시길 빕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