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7일자) 실물경제 돈기근 풀어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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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결산을 앞둔 은행들이 이달초 기업대출을 2개월간 연장해주기로 한 약속을 깨고 당좌대출 축소 등 대출회수를 강행하고 수출신용장 매입마저 외면하는 바람에 기업들이 연쇄부도의 위기에 직면하고 산업활동이전면중단될 지경에 이른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현재 은행대출이 사실상 중단되고 채권시장도 거의 마비된데다 사채시장에서도 초우량기업이 아닌 기업들의 융통어음은 전혀 할인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비록 할인이 된다 해도 3개월만기 어음할인율이 사상 최고수준인 월 5%까지 치솟았다. 연초 월 1.2%이던 사채금리는 기아사태 이후 차츰 올라 11월중순만 해도 월 2%선을 유지했으나 금융시장 마비현상이 나타난 11월말부터 가파르게 상승해 한달여만에 무려 2.5배나 오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비록 부도를 면한다 해도 어차피 정상적인 기업활동은 어렵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한라그룹과 기아그룹의 부도로 부품공급이 끊겨 이미 전면적인 조업중단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최악의 경우 기업들이 모두 망한 뒤에 은행만 살아남아봐야 무슨 소용이있겠는가. 우리경제의 성장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기 전에 우선 급한대로 기업을 살리고 실물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갈수 있도록 대응조치를 서둘러야 하겠다. 먼저 은행들은 더이상 BIS비율에 구애받지 않고 자금중개기능을 적극적으로발휘해야 한다. 이미 지난 24일 정부는 27개 은행의 후순위채권 4조3천6백92억원을 매입했기 때문에 제일 서울 등 4개 은행을 제외한 모든 시중은행들이 BIS비율 8%를 충족시켰다. 따라서 은행들이 더이상 BIS비율을 핑계로 대출을 회피할 명분이 없어진 셈이다. 우리는 어제 오후 임창열 부총리겸 재경원장관이 전국 35개 은행장회의에서독려한 대로 대출확대는 물론 후순위채권 발행에 따른 자금여유분을 일선 창구에 어떻게 배분하고 어떤 방식으로 운용할 것인지에 대해 신속히 결정해주기를 촉구한다. 연말을 앞둔 기업의 자금수요가 워낙 절박하고 부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은행이 외화부족을 이유로 수출환어음 매입과 수입신용장 개설을 꺼려 수출입업무가 마비상태인 현실도 빨리 개선돼야 한다. 특히 원유 LPG 나프타 원면 고철 밀가루 설탕 등 주요 원자재와 생필품의 수입이 어려워져 이들 품목의 재고가 바닥나는 다음달 중순이후에는 주요산업의 공장가동률이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수출이 위축돼 외채상환을 위해 필요한 외화가득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생필품품귀로 인한 가격폭등 및 사회불안마저 우려된다. 따라서 우선 신용보증기금에 대한 정부출연금을 크게 늘려 기업대출 및 수입신용장 개설때 지급보증을 서게 하고 수출보험을 적극 활용해 은행자산의 위험가중치를 낮춰줌으로써 부담을 덜어줘야 하겠다. BIS비율 이외에도 은행들의 외환보유고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을 감안해 한은은 보유외환을 적절히 배분해 수출입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