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해법' 영국에서 배운다] (4) '규제개혁'

[ 한국경제신문사 양봉진 부국장 현지르포 ] "울지 못하는 두견새"가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대응을 두고 16세기말 일본을 지배했던 세 지도자가 논쟁을 벌이게 됐다. 먼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나섰다. 조선을 침략했던 바로 그 도요토미다. "울도록 잘 달래 봐야지..." 목적하는 바가 있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마키아 벨리스트였던 도요토미다운 대응이다. 이번에는 오다 노부나가가 나섰다. "울지도 않는 게 무슨 두견새란 말인가. 당장 목을 베 버려야지" 일본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오다 노부나가형 지도자로 분류한다.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던 오다를 빗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나섰다. "울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수밖에..." 어릴적 오다 노부나가에게 볼모로 잡혀 고생을 하면서도 참고 또 참았던 도쿠가와다. 도요토미가 정권을 잡자 도쿠가와는 인내로 기다리고 또 기다려 최후의 패자가 되어 그 이후 수백년 이어진 도쿠가와 막부의 시조가 됐다. 일본인들이 지도자를 분류할 때 자주 인용하는 고전이다. 그런데 이 고전에 갑자기 하시모토 류타로가 끼어든다. 하시모토가 외쳤다. "두견새가 울 수 있도록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요즘 시티(은행 증권회사 등 런던의 금융 중심지)에서 유행하는 유머다. 규제완화라는 측면에서는 후진국이랄 수 있는 일본을 영국인들이 희화화한 것이다. 금융규제를 철폐하기 위한 "빅뱅(Big Bang)"을 위시하여 규제란 규제는 다 철폐해 버린 영국같은 서방세계에서는 규제완화(deregulation)라는 용어는 이제 흘러간 옛 노래에 불과할 뿐이다. "이곳 영국에서는 이제 규제완화라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쑥스러워졌다고나 해야 할 지 모른다"는게 시티에서 만난 한 펀드 매니저의 반응이다. 대처(Thatcher) 등 지도자들의 과감한 개혁이 이미 뿌리를 내렸다는 얘기다. 선진국중에서는 유일하게 일본만이 아직도 규제철폐라는 구시대적 유물구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아직도 "울지 않는 두견새"가 재미있는 얘깃거리로 각광받고 있는 게 그 증거라면 증거다. 우리의 처지를 살펴보면 더 한심하다. 규제완화라는 타령으로 시간만 보내다가 "울지 않는 두견새"를 "울 수 없는 두견새"로 만들어 버렸다는 게 현장에서 뛰는 한국 상사원들의 불만섞인 하소연이다. "아무리 뛰어다녀 봐도 팔 물건이 없는 것이 오늘 이곳의 현실입니다. 차라리 오다의 칼을 맞고 죽는 두견새가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외환위기를 맞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한 대기업의 런던현지법인장의 장탄식이다. 지난 십수년동안 온 세계는 경쟁적이랄만큼 규제철폐에 매달려왔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규제완화는 자유시장경제창달, 작은정부구현 등과 초록동색의 동의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더 솔직하고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공무원수를 줄이자"는 구호다. 영국, 뉴질랜드, 심어지 공기업민영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동유럽과 중국의 개혁 프로그램의 골자도 결국은 공무원수 줄이기에 귀착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철밥통(철반완)을 끼고 앉은 공무원수를 줄여 정부의 간섭을 최대한으로 억제하지 않는 한, 시장의 자율기능을 기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뉴질랜드의 경우, 85년 4천3백58명이던 교통부 직원을 94년 57명으로 줄여버린 것을 위시하여 과학연구부(2천4백18에서 34명으로) 산림부(7천7백96명에서 1백33명으로) 등이 뒤를 이었다. 기존 공무원 수의 10%도 안되는 숫자다. 전체적으로는 85년 8만5천3백78명이던 중앙핵심요원이 47%인 4만1백58명으로 줄어든 것이다. 영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국방부 내무부 국세청을 중심으로 인원이 대폭 줄어들어 80년 70만4천9백명에 이르던 중앙정부 공무원이 94년에는 53만3천3백50명으로 축소되었다. 재경원에는 국민생활국이라는 것이 있고 그 밑에 물가정책과라는 것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개방경제 자유시장경제시대에 물가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세는 구 소련의 계획경제와 죠지 오웰의 동물농장식 사고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증거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외국인 컨설턴트의 지적이다. 김영삼정부도 "작은정부"를 구현하겠다고 팔걷어부치고 나섰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정부가 한 일이란 구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합쳐놓은 것이 고작이다. 공무원 수가 줄기는 커녕 온정주의에 끌려 제대로 해낸 것이 없다. 두 부처를 합치는 과정에서 해외연수다 뭐다 하는 식으로 보직없이 떠도는 "위성공무원"만 양산하고 말았다. "부패는 규제를 먹고 산다"고 했던가. "우리나라 행정은 주사행정"이라는 말도 있다. "주사들이 모든 것을 꼭쥐고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과장급이상은 아무리 줄여봐야 소용이 없다"는게 기업을 하는 사람들의 지적이다. 과장급이상의 공무원들은 "높은 곳을 향해 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처신에 각별히 신경을 쓸 수 밖에 없고 경력관리상 아래공무원들을 함부로 다룰 수도 없다는 논리다.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덕이 없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끝장이다. 아래사람 잘못은 알아도 모른척 그냥 지나가는 공무원이 덕이 있는(?) 사람이고 또 출세도 할 수 있다. 고급공무원도 줄여야 하겠지만 "하급공무원부터 반이상 줄여야 한다"는 소리는 그래서 나온 주장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구현하기 위해 4,5개 부처통폐합과 함께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현행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을개정, 공무원들을 감원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보도되고 있으나 확인할 길은 없다. 인수위는 현행공무원법에 따라 공무원신분이 보장돼있어 인위적인 감원이 불가능함에 따라 공무원임면에 관한 특별법(가칭)을 제정하거나 관련법을 개정 사실상 공무원 정리해고를 시행할 방침이라는 얘기도 있다. 모든 민간기업에 대한 정리해고 방침이 이미 굳어져 가는 마당에 그동안 비대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지적돼 온 공무원조직의 감원은 불가피하다면서 이같은 인식하에 감축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특별법제정 등 몇가지 조처를 검토중이라는 얘기다. 이찌됐든 정부조직축소와 인원감축은 피할 수 없는 명제로 보인다. 총론적으로는 우리도 규제완화 물결에 휩싸여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실천을 못했다는 것 뿐이다. IMF관리체제에다 새 정부출범까지 묶여 오랜 숙제인 규제철폐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그 어느때보다 크다. 다만 고통분담 차원의 정치권 축소,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회의원 수도 같이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는게 일반의 여론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