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해법' 영국에서 배운다] (5) '투자의 새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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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마셜 도서관(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도서관)을 찾아가기 위해 케임브리지 역에서 기차를 내려 택시를 찾았다. 이상하게도 역에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살펴 보니 역에서 약 1백m쯤 떨어진 곳에 택시들이 모여 있었다. 그 곳까지 걸어가 그들 택시중 하나를 잡아탔다. 캠퍼스에 도착해 도서관 앞에 서있는 한 학생에게 "택시들이 왜 역에서 멀리 떨어져 대기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정부의 개혁 프로그램에 따라 철도가 민간에게 팔렸고 그 결과 케임브리지역 자체도 민간의 손에 넘어갔기 때문에 택시들이 철도회사에 역 사용료를 내지 않는한 역까지 들어갈수 없게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불현듯 대처(Thatcher)의 자유시장경제가 빚은 부작용일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민영화 이후 철도회사들이 흑자를 내는 기업으로 돌아서면서 국민의 세금부담이 줄어들었고 서비스도 좋아졌기 때문에 1백m쯤 더 걷는 것은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그 대학생의 부연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79년부터 89년까지 영국을 이끈 대처 정부가 대대적으로 공기업을 일반에 팔아치운 것도 결국 타산이 맞지 않는 기업을 정리한다는 차원의 결단이었다. 대처 정부는 1983년 한해에만 자동차회사인 재규어(Jaguar), 정유사인 브리티시 피트롤리엄(BP), 브리티시 가스(British Gas), 항공사인 브리티시 에어(British Air), 항만과 연안해운사였던 시링크(Sealink)등을 민간에 팔아넘겼다. 이들이 정부의 손에 들어있을 땐 적자 기업이었지만 민간의 손에 넘어간 이후 대부분 흑자로 돌아선 것은 물론이다. 한국 재경원이 채권시장 개방을 발표하던 날. 이날 영국 런던 금융시장의 싸늘한 표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채권시장 개방은 그동안 재경원이 깊은 장롱 속의 보물처럼 숨기고 숨기던 개방 카드였다. 시장의 금리가 30%대에서 맴도는 가운데 그같은 비장의 카드가 공개됐는데도 런던 금융가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무표정 그 자체였다. 까닭을 모를 바는 아니었지만 혹시나 하고 현대증권 런던지점에 근무하는 펀드 매니저 데이비드 브라운(David Brown)에게 슬며시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아직 때가 아닐 뿐 아니라 돈이 남을 것같지 않아서..." 금리차익보다는 환차손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금리차가 크다 해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그의 대답에 수긍이 갔다. "하지만 한국 주식시장이 폭락해 있기 때문에 점보 제트기 한대만 팔면 대한항공 지분을 인수,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비행기 전부를 소유할수 있다는 데도 그러느냐"며 주식시장 쪽으로 관심을 돌려 물어보았다. "그건 허상(Illusion)이다. 물론 점보기 한 대를 팔아 그 돈으로 대한항공 주식을 사들이면 대주주가 될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투자에 따른 리스크를 감안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대한항공 전체를 집어 삼키려다 공연히 그나마 갖고 있던 점보기 한대만 날릴 공산은 누가 책임질 것이냐"는게 브라운의 반문이다. 한국에서 오래 근무하다 런던으로 전근와 있다는 한 일본은행 임원의 한국기업에 대한 평가 또한 우리의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한국인들과 사귀는 동안 한국인의 계산방식이 매우 비자본주의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자본주의적 계산에 둔감하다고나 해야 할까요... 예를 들어 한국인들은 주주의 돈이 "공짜 돈"인 것처럼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수익이 좋지 않은 해에는 배당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생각을 고치지 않는 한 자본주의적 사고로 무장돼 있는 외부 프로들과의 대화에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장사를 하건 돈은 주주들에게 배당을 지급하고도 남아야 장사다운 장사라고 할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회사에 돈만 넣어놓고 내버려둘 주주는 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투자자가 아니라 자선사업을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주주들 돈이야말로 무서운 사채돈과 같다는 인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인식이야말로 일상 사고를 자본주의적으로 바꾸는 지름길입니다" 한국 대기업의 투자행태를 꼬집자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의 주장은 이어졌다. "주식투자를 하더라도 분산투자를 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한 주식이 떨어지더라도 다른 주식이 받쳐주면 전체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기업도 화학 전자 중공업등 여러가지 구색을 갖춰 놓는 것이 안전하고 그렇게 해야만 기업의 생존력도 강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여러 산업에 분산투자하는 것을 나무랄 이유는 없겠으나 그런 경우에도 "돈이 남는다"는 대전제는 그대로 지켜져야 합니다. 한국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따라서 외환위기를 맞게 된 것은 남는 돈이 없는데도 남이 한다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부풀리기가 주류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최근 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장사 1백81개를 대상으로 지난 86년부터 95년까지 10년간의 경제적 부가가치(EVA)를 계산해본 결과 이들 전체 회사의 EVA가 영이상인 해와 업종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와 있다. 쉽게 말해 "주주에게 배당하고도 남는 장사"는 어느해 어느 업종에도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한국에 3년동안 있었다는 한 영국인 펀드 매니저를 만나 보다 실질적인 질문을 던져 보았다. "그렇다면 외국인들이 한국에 투자해도 손해를 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될 때는 언제쯤으로 예상되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해 한국인들이가장 신경을 써야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여러번 강조한 그의 고언은 충격적이다. "한국의 관리들이 우리를 바보로 보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한국 관리들의 포커게임 수준이야말로 아마추어에도 미치지 못하고, 또 바닥에 드러나 있는 카드들이 낱낱이 읽히는 상황인데도 억지를 쓰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한국관리들의 이런 태도야 말로 한국을 위기로 몰아 넣은 주요 요인중의 하나라고 봐야 하고, 이런 분위기가 불식되지 않는 한 한국의 IMF탈출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기왕지사 바른 말하기 시작했으니 한가지만 더 묻겠다며 "김대중 대통령당선자 측으로부터 구조조정과 맞물려있는 재벌정책에 관한 방향들이 이것 저것 흘러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한 느낌은 무엇이냐"며 김대중 차기정부에 대한 느낌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의 대답 또한 단 한가지로 이어졌다. "기업들이 "돈이 되지 않으면 절대 손대지 않는다"는 가장 기본적인 자본주의 원칙만 지키려든다면 김대중 당선자의 대기업정책 자체가 필요없어져 버릴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