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살찐 돼지보다... .. 박영애 <소설가>

소문으로만 듣던 외제 수입품 전문 부티크.별천지 같다. 여자 잠옷 한벌에 1백8만5천원, 앙증맞게 조그만 핸드백 하나가 4백90만원,남자조끼 한벌에 1백9만7천원이라니.. "요새두 잘 팔립니까" 빙충맞은 질문에 점원의 대답은 간단하다. "전화로 주문들 합니다" 사회가 송두리째 흔들려도 충격조차 느끼지 않는가. 여기는 위기불감지대다. 온 나라가 외채로 떠들썩하다. 신문과 텔레비전은 도배질하다시피 모자라는 달러액수를 읊어댄다. 환율 춤사위에 나라경제는 그야말로 하루하루 살얼음판이다. 국가 부도사태를 맞아 온국민이 신음하는데 금쪽같은 달러로 수입해온 몇백만원짜리 옷과 핸드백과 조끼를 입는 그들은 어느나라 백성인가. 서민들은 콩나물 값과 버스비를 절약하느라 총칼없는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데 "내돈 내가 쓰는데 신경끄라"니 과연 대책은 없는가. 1년치 반찬값이 한벌의 외제 원피스나 한켤레 수입구두와 맞먹는 이 현실을어떻게 설명할까. 금융.외환위기의 급한 불은 끈다고 해도 우리의 의식혁명없이는 문제의 근본해결은 어렵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한때 "신인류"라는 말이 유행했다. 기성세대와 전적으로 가치관이 다른 젊은 세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세대,모든 계층이 "신인류"로 거듭나야 한다. 돈으로 포식을 하고 돈으로 온몸을 치장하고 돈으로 폼을 잡는 사람이 경멸받는 사회가 되지 않고는 이번 위기를 어찌어찌 넘긴다고 해도 산넘어 산이다. 우리야말로 축소지향으로 생활태도를 바꾸는 일이 급하다. 텅 빈 머리를 이고 베르사체의 디자인으로 온몸을 치장한들 어디 아름다울까. 살찐 돼지보다는 야윈 소크라테스가 찬양받는 풍토는 이룰수 없는 꿈인가. 외화낭비로 이어지는 사치에는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다. 서민들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쓰고 보자다. 반찬값 천번을 아껴도 외제 스카프 하나에 날아간다. 주부들이 가정에서부터 병든 사회의 "규율부장"으로 나설 때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