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2일자) 적자재정은 불가피한 선택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경제운용과 관련해 당초의 합의의향서 내용을 상당부분 수정키로 합의한 것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본다. 우선 경제가 당면한 과제들을 해소하는데 크게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점이다. 통화증가율의 상향조정등 긴축고삐를 당초보다 늦추기로 함으로써 자금시장경색을 다소나마 해소시켜주고 금리안정에도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수출부문이 외화공급및 고용창출의 근간이라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이부문에 대한 한은의 외화지원 등을 허용키로 한 것도 눈여겨볼 만한 변화다. 그러나 더 크게 의미를 두고싶은 것은 당초 소폭의 흑자유지를 요구했던 재정운용에 대해 적자도 용인하기로 바꾼 대목이다. 사실 올해 우리가 재정흑자를 유지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마구잡이식으로 세출을 깎고 세율을 올린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겠지만, 그러한 결과는 필시 경제파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경제회생의 기본전제인 금융기능 정상화와 늘어나는 실업위기 등에 대처하려면 재정의 역할은 어느때보다 적극적이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반면 경기침체로 인한 세수감소는 세율인상으로 메우기에 역부족이다. 세출삭감은 경기침체를 더욱 가속화시킬 우려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합의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우리는 이번 합의사항이 갖는 또 다른 의미를 IMF가 한국경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는 점에서 찾고자 한다. 그동안 IMF의 처방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는 경제의 기본바탕이 개발도상국들과는 판이하게 다른데도 똑같은 처방을 내린 것은 한국경제를 오히려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는 점이었다. 예컨대 재정운용이 건전할 뿐아니라 통화증발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긴축일변도의 처방은 잘못된 것이고, 한국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점에서 그 처방도 달랐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IMF가 이번에 그런 점을 인식하고 기존의 개도국식 처방을 상당히 수정한 것에 대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경제성장률을 낮추고 물가상승률을 높이는 등 현실적인 경제여건을 감안해 조정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한다. 이번에 합의된 지표는 이행기준이 아닌 예시지표로 설정된 것이어서 2월중순의 협의에서 재조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재정적자를 어느정도로 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도 달라질수밖에 없다. 정부는 앞으로 IMF와 갖게될 추가협상에서 실효성있는 규모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만 정부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이번 합의가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경제는 모든 경제주체들이 고통을 분담하지 않으면 헤쳐나갈 길이 없다는 것은 대전제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긴축의지는 더욱 필요하고 불요불급한 지출삭감에 최대한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예상되는 새 정부의 조직개편에도 이같은 원칙은 절대적으로 적용돼야 할 것임을 강조해 둔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