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일자) 대 타협을 위한 첫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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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막판 진통을 겪기는 했지만 노-사-정 3자가 고통분담에 관한 대체적인 기본방향에 합의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합의된 내용과 회의진행상황 등을 감안한다면 결코 만족스럽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리해고제 도입을 포함해 대체적인 의제와 내용에 합의를 이뤄낸 것은 고통분담 의지를 각 경제주체들이 함께 다짐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다소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특히 오는 21일 뉴욕에서 외채상환연장 문제를 논의하게될 주요채권단과 우리 대표단의 협상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합의된 주요 의제는 사회보장제도 확충과 노동기본권 보장, 종합적인 실업대책 수립, 고용조정에 관한 법률정비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10개조 34개 항목으로 된 기본합의문 이외에 해고근로자들의 권익보장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현장근로자의 신뢰회복을 위한 선행조치" 4개항을 별도의제로 채택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러한 노-사-정 3자의 합의가 어려운 여건에서 이뤄낸 결단으로 위기극복의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그러나 아직도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떨쳐버리기는 어렵다. 부실금융기관의 구조조정과 관련해서 최종 합의과정에서 보여준 노동계의 반대는 아직도 외채위기의 상황인식이 제대로 이뤄지지않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더구나 이번 노사정위원회가 고통을 분담해 벼랑끝에 몰린 국가경제를 위기에서 구해내자는 취지인데도 불구하고 합의에 도달하기 까지의 과정은 마치 주고받기식의 흥정으로 일관하고 있는 듯하다. 예컨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의 철폐, 공무원및 교원의 노동기본권보장 등이 주요 논의과제로 등장한 것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노사정위원회가 좀더 경제위기상황을 직시하고 이달말께로 예정된 구체적인 세부 실천계획을 마련하는데 있어서는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할 것이 아니라 선후완급을 가려주기 바란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밝힌 바로는 노사정위원회가 모든 사회적합의를 이끌어내는 상설기구로 운영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당장 급하지 않은 과제까지 끌어들여 주고 받기식의 흥정을 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또 뜬구름 잡는식의 두루뭉수리 표현으로 고통분담에 참여했다는 명분만을 찾아서도 곤란하다. 공동합의문을 작성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실행에 옮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노-사-정 3자는 보다 냉철하게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고 집단이기주의에 빠지지 않고 국가를 생각하는 관점에 서주기 바란다. 어느쪽도 상대방의 양보만을 기대하거나 우리만은 포기할수 없다는 이기주의로는 이 난국을 극복할수 없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다만 지금 우리가 외국금융기관과 해외투자자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정리해고제도입 등은 우리경제의 사활이 걸린 현안이라는 점에서 수용원칙의 천명뿐아니라 현재 개회중인 임시국회에서 법제화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