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외채조정협상에 거는 기대 .. 표학길 <서울대 교수>
입력
수정
표학길 향후 한국경제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외채 조정협상이 내일로 다가왔다. 이번 협상에 대해서 뉴욕의 금융가는 물론 IMF와 미 재무부가 위치한 이곳 워싱턴에서도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마침 1월18일자 워싱턴포스트지는 아시아 금융위기와 한국의 상황에 관한 두가지 기사를 특집으로 보도하고 있다. 하나는 긍정적인 기사로 최근 상황이 더욱 악회되고 있는 인도네시아나 태국에 비해 한국의 원화환율과 주식시장이 약간 호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 12월에는 36억달러 정도의 무역수지흑자가 기록되었다는 것도 보도하고 있다. 부정적인 기사로는 지난 17일 서울에서 노동자와 학생 약2천5백명이 정리해고 반대시위를 벌였다는 기사이다. 어렵게 구성된 노사정위원회의 앞날이 험난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어서 외국언론에 비치는 우리의 실상에 착잡한 마음을 금할수 없다. 이제 눈앞으로 다가온 외채조정협상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임하여야 할 것인가. 모든 종류의 채무-채권자간의 협상이 그러하듯, 불행하게도 채무자인 우리에게는 선택가능한 대안들이 많지 않다는 점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실 한국의 정부대표단은 최악의 시점에서 최악의 여건하에 협상에 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최악의 시점과 상황이라고 하는 이유는,첫째 국내적으로 노-사-정 협약이 완성되지 않았고, 부실금융기관 정리해고제 법안마저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IMF, 미 재무부및 채권은행단으로서는 한국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개혁의 성공가능성이 미국 의회나 각국의 투자자들을 설득할수 있는 최대의 무기인데성공한다는 확신을 굳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재확산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위기,그리고 추가지원을 신청하고 있는 태국의 위기 등이 한국의 외채조정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오는 26일 미 의회가 속개되면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을 중심으로 IMF에 대한 추가지원 축소와 미 정부재량으로 사용해온 외국환평형기금운용에 대한 제한조치 등이 제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미 의회의 보수적 분위기는 한국구제금융을 주도해온 IMF와 행정부는 물론 미국채권 금융단의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다. 이번 외채조정협상의 핵심사안은 2백50억달러 정도의 중장기 정부채권발행안으로 알려진 "JP모건안"의 채택여부에 있다. 이 안은 정부가 1년, 3년, 5년, 10년만기의 채권을 2백50억달러정도 발행해 1백50억달러는 외채전환에, 그리고 나머지 1백억달러는 외환보유고 충당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예상되고 있는 금리는 12~15% 수준으로 상당히 고금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만 당초 이 안이 제안되었을 때와는 달리 중도상환(콜옵션)이 가능하고 신용도에 따른 변동금리(크레딧 스텝다운)의 적용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총채무의 35%를 갖고 있는 유럽계 은행들과 30%를 갖고 있는일본계 은행들은 10%에 불과한 채권을 갖고있는 미국계 은행들이 이번 협상을주도하는데 불만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들은 현재 한국의 채무를 일단 3개월정도 만기연장하는데 주력하고,그후 채권단과의 개별협상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러나 유럽계 은행들과 일본 은행들은 미국 은행보다 동남아위기로 인해 상대적으로 많은 액수의 부실채권을 떠안고 있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뿐만아니라 작년 12월3일의 IMF구제금융,그리고 지난 연말의 G-7에 의한 조기지원약속 등이 사실상 미국정부 주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들 은행이 이번 협상을 주도할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고 본다. 다만 이들 은행의 주장을 어느정도 수용하여 "JP모건안"이 일부 수정될 수는 있을 것이다. 가령 외채전환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1백50억달러의 일부를 유럽통화및 일본 엔화로 발행하고, 유럽 일본 은행들이 사게될 외채전환채권은 현재 한국 은행들이 안고 있는 부채의 만기연장에 대신 사용될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이다. 한편 당초 한국정부는 외평채발행, 일부 외채의 만기연장합의및 신디케이트론(협조융자)등 소위 패키지에 의한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의 정부채권에 대한 신용등급은 바닥에 있는 상태이고,세가지 방안이 전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채권국인 미국이 주도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결국 뉴욕으로 가는 협상대표팀은 "JP모건안"을 받아들이되 가능한한 금리를 낮추고, 콜옵션의 유지를 꼭 관철시키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이번 조정협상이 끝나더라도 정부는 제고될 신인도를 바탕으로 외평채의 발행, G-7의 지원확보및 신디케이트론의 계속적인 확보노력에 주력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