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만의 한국 외환지원 조건 .. 이홍표 <세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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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표 대만이 최근 한국에 대규모 금융지원을 제의해오고 있다. 리엔쩐(연전) 부총통이 지난 12월17일 대만이 아시아개발은행(ADB)이나 아-태경제협력체(APEC)의 회원국 자격으로 IMF의 대한 금융지원 패키지에 참여의사를 밝힌데 이어, 대만의 제1 야당인 민진당의 쉬신리양(허신량)주석도 서울~대북간 민항 개통을 조건으로 1백억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의하였다. 이런 가운데 대만 집권당인 국민당은 2월에 웨이시아오얀(장효엄)사무총장을 한국에 보내 금융지원문제를 협의할 방침임을 밝혔다. 대만이 대한 금융지원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한국이 어려울 때 도와줌으로써 92년 한-중 수교이후 소원해진 한-대만 관계개선의 전기를 마련코자 하는 것이다. 대만은 특히 이를 통해 자국의 경제적 실리확보및 국제 위상제고를 기대하고 있다. 대만은 전자및 기계부품 분야에서 한국의 OEM(주문자상표부착 생산)생산기지로서, 한국의 외환위기가 대만경제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대만은 또한 한국과는 수출분야에서 경쟁관계에 있어 외환위기 심화로 한국의 통화가치가 지속적으로 절하된다면, 대만의 수출경쟁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외에도 대만은 아시아 경제대국인 한국을 지원함으로써 경제력을 과시,자국의 외교전략을 강화할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절대적인 외환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에대한 대만의 제의는 여러면에서 적극적으로 고려할 가치가 크다. 무엇보다도 대만의 지원이 실현된다면 지원규모로 보아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IMF의 구제금융을 주도하는 미-일 등서방국가들의 경제적침투를 완화시킬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제의가 한-중 관계에 미칠 영향이다. 92년 한-중 수교이후, 한-중및 한-대만 관계는 영합(zero-sum)관계이다. 이는 한국이 수교에 급급한 나머지 대만과의 관계를 단절하라는 중국의 요구를 너무 쉽게 수용한 결과이기도 하나, 수교에 따른 대만측의 보복조치에도 연유하고 있다. 중국은 대만이 경제력을 앞세워 자국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시키려는 외교전략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여오고 있다. 92년 중국이 한국과의 수교를 당초 예상보다 앞당긴 이면에는 대만의 이러한 전략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현재 중국이 한-대만 관계개선을 원치 않고 있음을 감안할 때,이 문제는 우리에게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중국은 오랫동안 자국의 외교관계와 관련, "정경분리"원칙을 견지해오고 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한국과도 수교전부터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한-중 수교시에도 이러한 원칙이 한-대만 관계에도 적용될수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따라서 대만의 제의가 순수한 경제적 동기에 기초한 것이라면 큰 문제가 안될 것이다. 또한 중국은 오랫동안 "어려울 때 조건없이 지원하는 것이 진정한 선린우호의 초석"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오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은 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당시 중국에 상당한 지원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94년부터 이제까지 경제개발협력기금(EDCF)을 통해 2억4천만달러 상당의 경제원조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현재 외환보유고(홍콩분 포함)가 2천3백억달러에 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직접금융지원을 거부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지난 10여년간 빠른 경제협력을 통해 이미 높은 상호의존관계를 갖게 되었다. 중국은 한국의 제3대 교역대상국이고,한국은 중국의 제5대 교역대상국이다. 또한 중국은 건수측면에서 한국의 최대 해외투자대상국이 되었고, 양국은 이미 5개 산업분야에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경제침체는 중국에도 심대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이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중국에 이해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상기한 점을 모두 고려할 때 한국은 대만과의 협상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만이 한국과 관계개선의 전기를 마련코자 하는 의도를 무시할 수는 없겠으나, 중국과의 기존관계를 감안하여 가급적 민간차원의 협력방식으로 지원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비록 민간차원이지만 이의 실현은 경제부문에서 한-대만 관계개선에 크게 기여하게 될 뿐 아니라 한국의 빠른 경제회복을 가져와 궁극적으로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더욱 강화할수 있게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