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기술 유출 손해배상 쉽지 않다"..승소해도 실익없어

64메가D램 제작기술 유출사건과 관련, 삼성전자와 LG반도체는 대만의 반도체 제조회사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일단 누출된 정보가 부정경쟁방지법상의 영업비밀로 인정받는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기업이 별도의 노력과 비용을 들여 만든 기술로 독립된 경제적 가치가 있으면 비록 제품분석을 통한 역설계나 이를통한 기술정보 획득이 가능하다해도 하나의 영업비밀로 인정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이기때문이다. 그러나 법조계는 이번 사건이 국교가 체결되지 않은 외국업체가 관련된 점 기술전달과정에서 로열티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기술을 이전해 준 점등에 비춰 대만업체의 범죄고의성을 입증하기가 쉽지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국내법원에 영업비밀침해 등과 관련된 소송을 제기해 승소판결을 받더라도 대만법원의 확정판결을 구해야 하는 절차상의 어려움과 반도체 제품의 수명주기가 초단기인 점 등에 비춰 소송의 실익이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국내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경우 대만회사가 소송에 응할지가 의문"이라며 "국내에 별도의 영업소가 없을 경우 소송서류를 전달하는데만 최소 6개월 이상 걸리는데다 송달을 거부할 경우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또 대만법원에 직접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대만측이 로얄티지급계약에 따른 합법적인 기술이전이었을 뿐 불법으로 회사 기밀을 빼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발뺌할 경우 민사책임을 물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구나 수사관할권이 없는 대만인들 상대로 범죄의 공모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도 남아있다. 매달 기술이전료 명목으로 받기로 한 돈을 삼성 등이 받아내는 방법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대만회사가 채무승계를 인정해줘야 하는데 기술이전의 불완전이행등을 이유로 거절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국제심판소에 이의신청를 제기할 수 있지만 최소한 2~3년이 걸리는데다 이 경우 64메가 D램의 기술적 효용가치는 상실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손해액을 받아내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이번 사건은 검찰수사가 대만회사의 적극적인 공모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손해배상은 사실상 어려우며 핵심기술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통한 사전누출방지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뼈저린 교훈만 남긴채 종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