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부조금

이조 명종 선조 연간에 활약했던 유희춘이 남긴 미암일기를 보면 1567년부터 1573년까지의 기간중에 모두 2천7백88번 선물을 받고 1천53번 선물을 준 기록이 나온다. 조세납부 같은 공문서기록이 허술했던데 비해 놀랄 정도로 상세한 기록이다. 이로부터 약 4백30년뒤인 최근 지난 92년부터 그날그날의 지출을 기록해온서울시내 모대학 이모 교수가 개인지출의 약 40%가 경조사비임을 알고 새삼 놀랐다는 보도가 있어 화제다. 수백년이 지나 경조사비의 의미도 적잖이 달라졌지만 이것만 봐도 예나 지금이나 우리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경조사에 신경을 쓰는지 충분히 짐작할수 있다. 그런데 과거에는 결혼식이 많은 봄가을에만 경조비부담이 집중됐으나 요즘에는 시도 때도 없이 쌓이는 청첩장이나 부고장이 고지서로 보일 정도로 경조사비가 큰 부담이 된다.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관혼상제만은 번듯하게 치러야 했던 전통사회에서 가까운 친지들이 쌀 기름 종이 명태 등으로 정성을 보탰던 미풍양속이 이제는 악습으로 전락한 셈이다. 심지어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청첩장을 뿌리는 일도 많다. 또한 권문세가인 거물 정치인에서부터 쥐꼬리만한 권력을 쥔 말단 공무원이나 대기업 임직원에게까지 경조사비의 형식을 빌린 뇌물이 성행하는 것도 큰 문제다. 이른바 "물좋은 자리"에 있을때 한밑천 챙기자는 계산에서 알만한 사람이나 업체에 청첩장이나 부고장을 마구잡이로 뿌리기 때문이다. 이같은 폐습은 바다건너 이민사회에까지 옮겨져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십수년전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한 이민자는 "20여년동안 같이 일해온 미국인 파트너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장미꽃 한송이만 들고 문상갔는데 한인사회에서는 툭하면 결혼이다 회갑이다 하며 부조금을 걷는데 50달러는 보통이고 1백달러를 내는 때도 적지 않다. 그래도 부조금이 적다고 섭섭해 하고 심지어는 왕래를 끊는 경우마저 있으니 딱한 일"이라며 한탄했다. 과공비례라는 옛말대로 빨리 반성하고 고칠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