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제도' 어디로 가야 하나] (6.끝) '졸속입법'

[ ''졸속입법 안된다'' ] 지난달 13일 오후 대한상공회의소 2층 중회의실. 회사정리와 화의제도의 개선방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토론자들은 학계와 법무부 재경원 등 행정기관, 은행, 기업, 대법원 등 관계기관의 실무책임자들. 3시간반동안 진행된 이날 공청회에서 토론자들은 화의, 파산, 회사정리법등 관련법안을 통합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이런 의견들은 개정법안에 반영되지 못했다. IMF의 닥달로 시작된 개정작업이어서 서두를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졸솔입법이란 비난은 이래서 나온다. 외국에선 법정관리제도가 구조조정기의 기업재건을 위한 "필수과목"이란 인식아래 뿌리서부터 재검토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미국식 회사재건제도(챕터11)를 채택하기 위한 실무작업을 5개년 계획(99년 시행 목표)으로 진행중이다. 일본도 오는 2000년 시행을 목표로 회사갱생법 전반에 대한 재검토 작업에착수했다. 물론 기업의 가치를 오랫동안 보존하고 사회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방향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안대로 통과되면 법정관리제도가 너무 경직적으로 운영될 소지가 크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신청 문호를 좁히는데 포커스를 맞춰 그만큼 다수 기업의 회생 여지를 차단해 버린다는 지적이다. IMF체제하에서 화의의 활용가치는 기업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에도 절대적이라는 것이 로펌 변호사들의 한결같은 주장. 회사정리와 화의가 은행의 BIS 비율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다른 까닭이다. BIS비율이란 자기자본/위험가중자산으로 은행의 자본건전성을 나타내는 수치. 국내 은행들은 국제결재은행이 작성한 기준에 따라 8%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한 은행의 거래기업이 회사정리나 화의를 신청했다고 치자. 대출금은 불건전여신중 추정손실로 간주돼 1백% 부실여신으로 평가절하된다. 먼저 회사정리 예를 보자. 인가결정을 받고 정리계획안에 따라 채무를 갚아 나갈 경우 "회수의문"으로분류돼 위험가중치가 75%로 낮아지게 된다. 1백억원을 대출해준 경우 25억원은 회수가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게 되는 것. 신청에서 정리계획안 작성까지 평균 2년이상 걸리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 가중치도 2년후에나 적용받게 된다. 그러나 화의는 다르다. 인가결정이 내려지면 "회수의문"이 아닌 "요주의" 대상으로 분류돼 위험가중치가 3%만 적용된다. 이런 차이는 현행 회사정리의 경우 채무변제기간이 최장 20년으로 긴데다 채무액 전부를 갚는 조건으로 정리계획안을 짜야돼 정상적인 이자지급이 불가능하기 때문. 반면 화의는 신청후 인가결정까지 걸리는 시간이 약 6개월에 불과하다. 대출은행은 년말 BIS비율산정에 그만큼 유리한 조건을 적용받는 셈이다. 그러나 화의법 개정안에는 대출금의 규모와 채권자수, 무리한 사업확장과 과다차입 등 부실경영으로 인한 화의신청은 기각토록 했다. 은행으로 봐서 화의인가에 동의하는게 편한데 개정안은 이를 막아놓은 셈. 그렇다고 BIS기준을 맞춰 나가기 힘든 회사정리에 동의하기도 어렵다. 결론적으로 기업들의 법정관리행 티켓따기가 훨씬 힘들어졌다는 얘기다. 그래서 "실물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금융기관 역시 공멸할 수 밖에 없다"(정진영 변호사)거나 "섣부른 개악보다는 통합운영을 장기적 과제로 두고 운영상의 묘를 살리는 것이 필요하다"(조대연 변호사)는지적이 끊임없이 나온다. 발상의 전환이 아쉽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