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IMF 시대와 친절경영 .. 정몽혁 <현대정유 사장>

정몽혁 얼마전 책에서 읽었던 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이른바 맹구주점이야기다. 옛날 중국의 한 마을에 주점 네개가 있었다고 한다. 마을이 좀 크긴 했지만 주점이 네개나 있다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다 못해 한 술집 주인이 요즘으로 말하면 차별화된 영업전략을 세운다. 우선 정성을 다해 술을 맛있게 빚었다. 또 좀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돈을 투자해 술집내부도 술맛나는 분위기로 단장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가격파괴를 단행해 술값도 다른 집에 비해 싸게 받기로 했다. 술집주인은 기대가 컸다. 그러나 막상 신장개업을 했는데도 찾는 손님이 별반 없었다. 다만 자신이 기르던 강아지 한마리 만이 쓸쓸한 그의 마음을 위로해줄 뿐이었다. 개업후 한달남짓 되었는데도 여전히 자리엔 파리만 날리고 맛좋게 담가놓은 술도 그만 쉬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크게 상심한 주인이 마음을 달래고자 막 밖으로 나서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평소 살갑게만 대하던 강아지가 주점을 찾는 손님에게 컹컹 짖으며 물어뜯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강아지가 덤벼드는 통에 손님들은 주점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얼씬거릴 뿐이었다. 그는 어느새 손님들로부터 자기 주점이 맹구주점으로 통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IMF체제 아래서 우리경제는 당분간 저성장 고실업 고금리의 고통을 맛보게 될 것이며, 정부 기업 개인 모두가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다. 통화관리 강화 및 재정긴축으로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고 내수시장이 위축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기업들은 생존위주의 비상경영을 하고 있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 기업들은 생산성향상과 기술개발 등 경쟁력 확보에 중점을 두어 수익성과 현금흐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와 함께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근면 절약으로 국가경제를 살리는데 모범을 보여야 한다. 또한 노사간의 정보공유를 바탕으로 외국 투자자들이 우리 기업에 대한 신뢰도를 갖게 하는게 중요하다. 환율상승으로 수출의 가격경쟁력과 채산성이 회복될 가능성이 큰 만큼 수출을 최대한 활용하여 어려운 시기를 넘기는 전략적 고려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고객에 대한 서비스다. 그동안 우리나라 기업들은 친절서비스를 경영의 한 전략으로 채택해 왔지만 구호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일본의 MK택시나 스칸디나비아 항공사인 스칸디나비아 에어라인 시스템(SAS)에서 진정한 친절서비스를 배워야 한다. MK택시의 유봉식 회장이 택시를 시작할 때만 해도 승차거부 불친절 운전사의 잦은 교체 등으로 인해 일본 택시업계는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택시업에 뛰어든 유회장의 경영전략은 바로 친절이었다. 유회장은 우선 택시 운전사들에게 인사하는 법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사내는 매일 인사연습으로 합창대회를 방불케 했다. 이런 MK의 친절은 적중했고 세계적 영화배우인 알랭 들롱도 일본에 갈때면 언제나 MK택시만을 고집한다고 한다. 적자를 내던 스칸디나비아 SAS사를 3년만에 흑자로 만든 당시 40세의 칼슨 사장의 비결도 바로 친절경영이었다. 기업의 이미지는 고객과 첫 만남의 순간인 5~10초 사이에 결정이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 순간을 "진실의 순간"(the moment of truth)이라고 말했으며 그 순간에 회사의 승패가 좌우된다고 보았다. 그는 진실의 순간에 고객들에게 더욱 친절하라고 강조했다. 고객은 변하고 있다. 이젠 기업들도 진정으로 고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도록 조직의 마인드를 바꾸고 변화의 길에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기초예절인 전화예절 교육부터 다시 시작하면 어떨까. 잘못 걸려온 전화라도 퉁명스럽게 받거나 일방적으로 끊어버린다면 "진실의 순간"에 고객은 상처를 입을 것이며, 고객은 기업으로부터 영원히 멀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조직에 있어서의 맹구는 찾아온 손님이나 협력업체 파트너를 괴롭히는 사람들 뿐만이 아니다. 전화를 잘못받아 고객들의 마음을 상처나게 만드는 사람도 맹구와 다를바 없다. 전화예절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회사에서 고객만족이 있을리 없다. 행여 우리 스스로 몸담고 있는 조직, 혹은 이 나라의 맹구가 아닌지를 이 순간 겸허하게 되돌아 보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