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파생상품 법정분쟁의 교훈..정대용 <한화경제연구원>

정대용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온 국민이 고통을 받고 있는 시기에 국내 금융기관들은 외국의 대형 금융기관과의 파생상품거래및 지급보증으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어 파문이 증폭되고 있다. 파생상품거래의 실적을 원금상환에 반영하는 조건으로 미국계 투자은행인 JP 모건으로부터 차입하거나 지급보증을 한 국내 금융기관들이 동남아의 통화가치 폭락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자 JP 모건측을 상대로 법정투쟁에나선 것이다. 이번에 국내 금융기관과 JP 모건간에 문제가 된 거래(통화 파생상품이 가미된 마이너스펀딩 상품거래)는 "마른 하늘에 벼락"(바트화 폭락)이 떨어질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한 국내 금융기관의 위험한 "배팅"인 반면,동남아 통화위기를 예견한 외국 금융기관의 시기적절한(한편으론 의도적이라고 할수 있는)리스크관리의 작품이라고 볼수 있다.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국내 금융기관들은 JP 모건이 동남아 통화가치의 하락을 예측하고 이와 같은 거래를 유도했을 뿐만 아니라 "신의 성실에 입각한 의무"(fiduciary duty)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의 거래는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90년대초 미국에서도 파생상품거래의 사고는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여 법정다툼으로 번졌었는데, 유사한 경우로서 P&G (Procter&Gamble)와 깁슨 그리팅스가 BTC(Bankers Trust Company)에 대해 법정투쟁을 벌인 결과 법원이 원고들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BTC가 상당부분 양보하는 형태의 화해가 이루어진 선례가 있다. 당시 연방법원기록(WSJ, 1996.5.14)에 의하면 P&G는 BTC가 파생상품거래와 관련된 주요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사기거래를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BTC를 변호했던 설리번&크롬웰 법률회사의 리처드 클래퍼변호사는 "파생상품 딜러들은 일반적으로 고객이 취하는 포지션과 반대의 포지션을 취하는 시장조성자이기 때문에 고객에게 조언자의 역할을 해서는 안되며,이는 딜러들이 거래상대방의 이해를 우선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당시 재판을 맡았던 존 페이킨스 판사는 "파생상품 딜러들이 그들 고객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만 하는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견해를 밝힘으로써 매우 중요한 판례를 남겼다고 볼수있다. 이번 법정분쟁은 그 결과에 상관없이 국내 금융기관들이 대외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국내 금융기관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 하더라도 이는 자신들이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파생상품을 이용하여 역외 펀드를 무모하게 운용하였다는 사실을 전세계에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또한 이번 사건이 점차 회복되고 있는 한국의 국제신인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이와 같이 잃는 것이 많은 반면, 이번 법정분쟁으로부터 국내 금융기관들이얻을수 있는 교훈도 많을 것으로 본다. 범세계화 규제완화 증권화로 대변되는 국제 금융환경에서 기업이 직면하는 금융리스크를 관리하고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파생상품의 이용이 불가피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파생상품은 그것이 어떻게 운용되느냐에 따라 기업을 파산으로 몰고가는 악마가 될수도 있고, 리스크관리의 첨병 역할을 하는 천사가 될수도 있는것이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이번 사건으로 "큰 손실이 발생할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고는 절대로 큰 이익을 기대할 수 없다"는 "리스크와 수익률의 기본원리"를배웠을 것이다. 파생상품 거래시 리스크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거나 간과한 상태에서,또는 리스크조정 수익률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있으므로 국내 금융기관들은 최근의 거래사고를 중요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파생상품 자체가 무조건 위험한 것이 아니라 파생상품에 대한 이해부족과 잘못된 거래목적의 설정, 내부 통제시스템의 결여가 문제일 것이다. 전문성을 요구한다는 특성으로 인해 파생상품업무가 소수 전문가의 "블랙박스"가 되면 조직차원에서의 감독및 통제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국내 금융기관들은 파생상품의 전문가 양성뿐만 아니라 파생상품거래를 위한 리스크관리체계를 조속히 갖추어야 한다. 또한 이번 파생상품거래 사고를 계기로 금융당국은 리스크관리시장의 정상적인 발전을 위하여 금융기관의 경영투명성을 제고하고 금융기관의 리스크관리체계 수립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방향으로 금융감독을 강화해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