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흐름을 잡아라] (29) '어음보험 가입, 연쇄부도 피하자'

원생산업은 그동안 나산실업에 직물제품을 공급해왔다. 이 회사의 박종래사장은 지난달 14일 나산이 부도나자 앞이 캄캄해졌다. 납품대금으로 받아놓은 어음이 휴지조각이 되버린 것이다. 원생이 받아놓은 건 4천8백만원짜리 어음. 그리 큰돈은 아니지만 요즘의 엄청난 돈가뭄 때문에 너무나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지경에 부닥친셈이다. 그런데 박사장은 뜻밖에도 솟아날 구멍을 찾아냈다. 지난해 동료기업인의 권유로 어음보험에 가입한 것이 기억났던 것이다. 박사장은 어음보험외에도 중소기업공제기금에도 가입해놓은 상황이어서 공제기금을 찾아가 어음보험을 담보로 전액을 보상받았다. 큰 기대없이 가입해놓은 어음보험 덕분에 수렁에 빠진 회사를 살려내게 된 것이다. 원생산업이 혜택을 받은 이 어음보험이 처음 실시된 것은 지난해 9월. 아직 반년이 채 지나지 않은 제도이지만 돈흐름의 블랙홀을 막는덴 큰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이 제도가 이렇게 빠른 기간안에 자리를 잡아가게 된 것은 우리의 급박한 현실 때문. 우리는 지난한햇동안 1만7천개의 사업자가 부도를 내는 상황을 겪었다. 이들중엔 적어도 7천여개업체가 다른사람의 어음을 잘못받는 바람에 연쇄부도를 당했다고 한다. 경영의 잘못이 아니라 단지 실수로 어음하나를 잘못받아 10년사업이 "도로아미타불"이 된 경우가 허다했다. 교통사고가 많으면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상책이듯 이런 땐 어음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좋을 수 밖에. 이미 어음보험에 가입한 중소기업은 현재까지 약정기준으로 1천4백38개업체에 이른다. 올들어 이미 14개업체가 보험금을 지급받아 연쇄부도를 피해갔다. 어음보험이란 거래관계에서 받은 어음이 부도날 경우 보험금을 지원받는 제도이다. 이를 취급하는 곳은 신용보증기금 각지점. 이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업체는 제조업을 영위하는 중소기업이면 된다. 그러나 오는 20일부터는 제조업관련 서비스업도 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영업실적이 1년이상인 법인기업이어야 한다. 같은 계약자에 대해 보험을 인수할 수 있는 한도는 지금까지 3억원이었다. 그러나 대규모어음거래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늘어남에 따라 모레부턴 8억원까지로 한도가 확대된다. 어음발행인의 한도도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오른다. 어음보험에 대상이 되는 어음의 조건은 이른바 진성어음이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당좌거래계약에 의해 발행된 약속어음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 보험은 가입일로부터 30일이후에 도래하는 어음이면 보상받을 수 있다. 액면금액이 3백만원이상이어야 하는 것도 조건. 당초 이 어음보험은 결제기간이 1백20일 이하인 어음만 해당됐다. 그러나 업계에선 5개월짜리 어음이 난무하는데 제도상엔 1백20일로 돼있는게 무리였다. 이에 따라 신용보증기금은 최근 어음결제기일이 1백50일짜리도 가능토록 했다. 보험요건에 1백50일짜리 어음도 가능케 하는 것은 오는 7월31일까지만 한시적으로 운영한다. 최근의 장기어음 부도난을 반영한 것이다. 요즘처럼 연쇄부도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황에선 정말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가는 것이 상책이다. 따라서 어음보험에 가입한 뒤 영업에 열중하는 것이 바람직한 경영방식일 수 있다. 그러나 어음보험에도 흠은 있다. 어음1건에 대해 어음금액의 60%밖에 부보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럼에도 안심하고 어음거래를 하기위해선 어음보험에 가입하는 것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큰 고민에 빠져들기전에 어음보험에 가입해두자. 이치구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