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재무구조 협약 문제 많다 .. 이원흠 <LG경제연구원>

이원흠 최근 일부언론에 보도된 기업과 은행간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협약"내용이 그대로 실행된다면 다음의 두가지 점에서 커다란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첫째 형식적인 면에서 이 협약의 법적근거를 한단계 높은 곳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다. 이 협약의 근거는 은행감독원규정 수준에서 마련할 사항이 아니다. 과거에도 이미 주거래은행을 통한 자기자본비율 개선을 위한 자구노력 지도, 여신한도 총액규제 등이 시행된 적이 있으나 그 당시에도 이런 행정편의주의적인 조치들의 법적정당성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이 협약의 형식을 보면 70,80년대식 관치금융의 행정지도가 부활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둘째 내용적으로도 문제가 많다. 새정부 기업정책 방향의 커다란 줄기중의 하나가 책임경영 구현이다. 책임경영의 요체는 의사결정을 할 권한이 있는 책임자가 자기계산과 자기책임 아래 의사결정을 적법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거래 계약 경쟁 등 기본적인 경제활동의 법적 정당성이 확보될 것이며, 거래당사자간에 경제활동의 결과에 대한 승복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협약에서 기업에 약속할 것을 요구하는 협약주체의 선정및 협약의 주요 요구내용 6가지는 모두 새정부의 책임경영구현 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볼수 있다. 우선 이 협약안에서는 계열기업군의 계열수및 계열의 주기업체와 주거래은행이 협약주체가 되어 양자간에 협약토록 규정되어 있다. 협약도 일종의 거래계약이라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새정부에서는 기업집단의 회장직이나 그 보좌직의 법적정당성을 의심하며"사실상의 이사"개념을 도입하여 이를 철폐하려 하고 있는 방향과도 배치되는내용이다. 책임질수 없는 계약주체가 협약에 서명하게 되는 상황이 빚어질수 있는 것이다. 셋째 부채비율 감축계획서,자구및 차입금상환계획서,계열 구조조정계획서,기업지배구조개선 계획서 상에서 작성해달라는 요구사항들은 모두 상법상 개별 기업의 이사회나 주주총회의 의결사항들이다. 이들 계열기업군의 계열주와 계열의 주기업체가 은행과 협약할수 있는 것인가. 협약했다 하더라도 법적인 정당성을 법원으로부터 인정받을수 있을 것인가가 매우 의심스럽다. 이런 협약 내용에 불만족스러운 소액주주의 대표소송이 홍수처럼 일어날 것이 예상된다. 또한 신규사업진출 국외투자 회사정리 화의신청 등도 은행과 사전협의를 하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개별 회사의 이사회나 주주총회에서의 의결사항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점도 크게 잘못된 점이다. 넷째 은행대출금의 증자전환에 합의할수 있다는 발상에도 문제가 있다. 약정한 금리로 정기적인 원리금상환을 받아서 수익사업을 영위하는 은행이 대출금을 출자전환하여 과연 수익성을 맞출수 있을까. 배당이나 주가상승으로 수익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출자는 BIS기준의 달성에도 도움이 안된다. 국가경제의 결제시스템을 형성하는 은행권의 위험노출 등을 고려해보면 현실성이 없는 발상이다. 다섯째 은행의 필요에따라 장부 공장 사업장 등의 조사를 하겠다는 발상에도 의문이 간다. 과도한 차입을 은행으로부터 해놓고서 그동안 아무리 불투명한 회계나 경영행태를 보여온 기업들이라 하지만 회계장부의 열람권은 소액주주권 행사요건 중에서도 가장 높게 행사요건이 규정될만큼 지켜줄 가치가 있다고 보는 권리이다. 정말 조사가 필요하다면 은행도 소액주주권 행사요건을 갖출 때에야 장부조사를 요구할수 있게 해야 한다. 채권자인 은행도 권리가 있지만 소액주주를 포함한 법인에도 인격이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이 협약내용에 주거래은행이 입수한 계열전체에 대한 내용을 다른 채권은행에 통보해도 이의가 없기를 바란다는 구절에 가서는 논평할 가치를 못 느낀다. 금융실명제의 실패가 탈법적인 개인신용관련 정보의 유출이나 누출과 직결되어 있다는 뼈아픈 경험을 간과하고 있다. 아무리 금융실명제가 유명무실화 되었다 하더라도 법인의 신용관련 정보는 적법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 미래지향적으로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기업의 구조조정 노력에 박차를 가하려는 정부당국과 관료들의 우국충정에 일말의 의심도 없다. 그러나 개혁조치도 경제민주화라는 대의명분에 걸맞는 정도를 걸어야 국민의 지지가 지속될수 있을 것이고 현실적으로 실천가능할 것이다. 정부가 은행을 좌지우지해서 기업의 구조조정과 경쟁력강화를 원격조정하려한다는 근거없는 의심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언론에 보도된 재무구조 개선협약안은 형식논리에서부터실질내용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다시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협약은 불평등계약이어서도 안되고 기업의 항복문서여서는 더욱 안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