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속의 외국기업] '필립스전자' .. 내수보다 수출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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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스코리아가 더 많은 수출로 우리 경제에 보탬이 되겠습니다" IMF한파가 거세게 몰아불기 시작한 지난 1월초, 필립스전자는 이런 헤드카피의 광고를 일간 신문에 일제히 게재했다. 다국적 기업이라면 흔히 해당국가의 내수시장만 파고들려한다는게 일반적인 생각. 따라서 신문을 펼쳐든 독자들 대부분은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TV나 면도기 수입업체로만 알았던 필립스전자가 수출로 한국의 경제 위기 극복에 한몫을 해내겠다니 말이다. 과연 필립스전자가 수출을 얼마나 해대길래 이 광고를 자신있게 냈을까. 이 회사의 지난해 수출실적은 2억5천5백만달러. 국산 전자부품을 필립스 전세계 공장에 내다팔아 올린 실적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수출실적 1천3백66백억달러에 비하면 0.18%에 불과한 미미한 액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별 수출실적을 따져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난해 1억달러 이상을 수출한 기업은 모두 78개 업체. 2억5천만달러라면 국내외 기업을 통털어서도 수출 랭킹 50위안에 들어가는 든든한 "외화벌이 업체"인 셈이다. 필립스의 올해 계획도 만만치 않다. 연초에 3억5천만달러로 잡았던 수출수출목표는 벌써 4억달러로 수정됐다. 목표가 달성되면 랭킹은 30위권으로 올라간다. 이미 필립스는 지난해 연말 삼성전관 오리온전기 등과 각각 1억4천만달러 규모의 브라운관 수출계약을 맺었다. 내수판매가 7천만달러 수준인데 수출이 4억달러에 이르는 기업은 흔치 않다. 수출과 수입 규모가 거의 맞먹는 회사들도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외국기업이 국내에 더 많은 부가가치를 남기고 있는 셈이다. 필립스전자가 수출기업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은데는 필립스의 독특한 현지화 전략이 주효했다. 필립스는 지난 76년 국내에 상륙했지만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수출실적은 미미했다. 수출이 급격히 늘기 시작한 것은 93년부터. 최고경영자(CEO)를 한국인으로 교체하면서 보다 현지화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회사 CEO자리에 오른 신박제 사장은 외국기업이 아닌 국내기업으로서의 발판을 든든히 하기 위해 수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연간 5천만달러에 불과하던 수출은 불과 2년만에 2억달러를 넘어섰고 3년만에 다시 4억달러를 돌파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필립스공장에 부품을 내다판다해서 거저 수출이 되는 것이 아니다. 각국의 현지법인들도 저마다 해당국의 부품을 납품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벌이고 있어서다. 따라서 필립스전자는 올해 4억달러의 목표를 채우기 위해 이미 수출부 직원을 총동원해 각국 공장을 돌며 한국산 부품의 납품 확대 가능성을 타진하는등 수출총력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또 이달말부터는 부품업체 공개 모집에 나서 보다 다양한 수출 부품을 확보할 예정이다. 내수는 IMF한파로 당분간 큰 기대를 걸고 있지는 않지만 애프터서비스의 강화와 꾸준한 이미지제고 작업을 통해 기틀을 닦는다는 전략이다. 기업 이미지 측면에서는 이미 꽤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취업정보전문기관인 리크루트의 조사에 따르면 96년부터 IBM을 제치고 대학생들이 가장 취직하고 싶어하는 외국회사로 꼽히고 있을 정도다. 여기에는 보다 적극적인 기업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한 노력이 주효했다는 내부 판단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사장이 지난 96년 애틀란타올림픽 한국선수단장을 맡았던 것. 외국기업 사장이 스포츠외교의 꽃이랄 수 있는 올림픽선수단장에 뽑혔다는 자체가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수출기업으로 급성장한 필립스는 또다른 변신을 꾀하고 있다. 수출과 내수의 두축으로 움직여 왔지만 이제는 본격적인 국내 제품생산에도나서겠다는 계획이다. 당연히 대규모 투자가 뒤따르게 된다. "완벽한 한국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필립스의 꿈이 착착 실현되는 셈이다. [[ 필립스전자 연혁 ]] 60년대 =필립스 임시사무소 설치 76년 =현지법인 설립 82년 =의료/조명사업 진출 85년 =소형가전부문 진출 86년 =부산지사 개설 89년 =가전사업부문 진출 90년 =고객서비스센터 개설 92년 =합작회사 대신필립스자동차조명 설립 93년 =한국인 CEO 취임 95년 =수출 2억달러 돌파 98년 =수출 4억달러 계획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