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아시아 경제위기 한국의 역할..박희종 <명지대 교수>

최근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중국과 홍콩의 신용등급을 낮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리경제에 불안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제2의 외환위기가 도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상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러한 소식은 매우 불길한 암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사실 최근의 경제위기를 논하면서 중국과 일본에 관한 여러가지 역할에 대한 논의에 주목하지 않을수 없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만한 부분은 동남아 통화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중국의 과잉설비 문제다. 이 논의에 따르면 전세계의 자본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가 값싼 노동력과 결합되어 중국은 엄청난 생산능력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는 곧 그동안 저임금으로 국제경쟁력을 확보해왔던 인도네시아 태국 및 말레이시아의 경쟁력을 현저히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위기는 즉각 홍콩및 한국으로 전파되었고 이는 다시 일본으로 전가되어 일본은 더욱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분석이 맞는다면 우리는 이제 아시아경제의 공황까지도 유추해볼 수있다. 이 시점에서 일본의 역할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바로 내수진작을 통한 수입촉진 정책이다. 경제공황은 지나치게 설비투자가 진행되다가 어느날인가 이러한 설비투자로부터 쏟아지는 생산품을 모두 소화해낼수 있는 유효수요의 부족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 경제가 계획경제가 아닌 이상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할수 없고,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호황시 엄청난 투자를 계속하고 이것이 계속되면 설비과잉, 곧 수요가 생산능력을 따라주지 못하게 되면서 불황내지는 공황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일본경제가 지금 아시아 내지는 전체 세계경제에 공헌할수 있는 방법은 내수진작을 통한 수입수요 창출이다. 사실 일본에서 거품이 본격적으로 꺼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초로서 무려 7년여가 흘렀다. 일본경제는 이 과정에서 거의 0%에 가까운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했고,일본내에서 거의 투자수익을 기대할수 없는 상태의 뭉칫돈들이 중국과 동남아로 수출되어 생산설비화한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일본은 자신의 초저금리정책을 통해 자본을 아시아 경제로 수출하여 오늘날의 과잉생산 설비를 잉태하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이러한 과잉 생산설비를 어느정도라도 막기 위해서는 그들이 창출하는 수입수요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렇게 일본이 자신의 수입수요를 증대시키게 될 경우 중국도 위앤화의 평가절하를 통한 수출증대를 도모하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위앤화의 평가절하는 현재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오던 동남아및 아시아경제에 핵폭탄을 투여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며, 완전히 수출경쟁력을 상실한 동남아경제가 더큰 위기를 맞게 되어 돌이킬수 없는 상황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우리나라는 이 와중에서 타격을 받고 휘청거리게 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모라토리엄의 위기마저 맞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펠트스타인 교수는 IMF의 한국경제에 대한 처방에 매우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사실 IMF의 고금리정책은 그들이 그동안 외환위기를 당한 많은 국가들의 문제를 다루면서 터득한 비법(?)가운데 하나다. 일반 외환시장을 안정시켜야 문제가 해결되고 이를 위해서는 해외자본이 들어올수 있도록 금리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펠트스타인 교수가 밝혔듯이 우리나라는 통상적인 국가들과는 다른 양상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간과할 경우 더 큰 실수가 나올수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가 가진 독특한 측면을 감안한 새로운 정책기조가 나와야 할 것이며 우리나라가 이러한 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매우 험난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우리경제의 고민이 있다. 위기를 당한 아시아 경제와의 공조체제를 계속 유지하고 그들과 경제정책에 관한 협의체를 작동시켜 수시로 정책을 검토하고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점에서 새정부가 외무부를 외교통상부로 확대 개편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외교통상부에 아시아 국가간 경제정책조정을 담당하는 기구를 설치하여 수시로 이들과의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일본이 이러한 역할을 포기하고 있는 이상 우리라도 앞장서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위기를 맞고 있는 아시아 국가간 정책공조체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새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