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조찬세미나] 'IMF 체제하의 한국 경제 전망' .. 유종근

유종근 대통령 경제고문은 1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IMF(국제통화기금)체제하의 한국경제전망''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날 강연에서 유고문은 외국자본이 들어온다고 우리경제가 예속되는 것은아니라고 지적하면서 개방은 우리자신을 위해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고문은 또 "개혁은 항상 위기상황에서 일어난다"며 "개혁은 10년이상해야 성공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개혁이 성공하면 일본을 능가할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연에는 기업체 금융기관 정부투자기관 임직원 등 2백여명이 참석했다. 다음은 강연내용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IMF체제를 극복하자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말이다. IMF에서 얼마나 섭섭하게 생각하겠는가. IMF는 우리나라를 도와주려고 왔다. 외환위기극복이 맞는 말이다. 우리는 IMF가 왜 개혁을 요구하는가를 알아야한다. 일부에서는 미국에 도움을 주기위해, 아니면 선진국들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의 외환위기는 일본등 다른 나라로 파급돼 결국 그들 나라까지 악영향을 미칠수있다. 그러나 이는 일부만을 본 것이다. IMF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얻음으로써 외환위기를 극복하도록 하기위해 개혁을 요구하고있다. 이는 외채규모와 IMF의 지원자금을 보아도 알수있다. 우리 외채는 1천5백억달러이나 IMF등 국제금융기관과 미국등 선진국들이 지원하는 자금은 모두 5백80억달러에 불과하다. 모자라는 1천억달러는 민간금융기관들의 도움을 얻어야한다. IMF는 바로 1천억달러를 해결하려면 민간금융기관들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보고 한국에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고통이 따르지만 우리자신을 위해 개혁을 해야하는 것이다. 시장개방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그러나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시장개방은 피할수없는 과제이다. WTO체제를 떠날수 없다는 말이다. 미국의 한 경제학자는 지난 80년대 일본산 자동차가 미국시장을 석권한 원인을 경쟁에서 찾았다. 미국보다 훨씬 좁은 일본 시장에서 미국보다 많은 9개사가 치열한 경쟁을 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애덤 스미스이후 경제학자들이 일관되게 주장하고있는 이론은 자유시장경제의 원칙, 즉 기업은 경쟁을 통해서 발전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수출은 애국이고 수입은 비애국이라는 말을 하고있으나 개방은 우리자신을 위해 받아들여야한다. 기업인수합병시장도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선진국 기업들이 우리 기업을 인수하면 우리나라가 경제속국으로 전락한다는 논리를 펴고있다. 그러나 기업가 여러분은 잘 알고 계시겠지만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 기업가는 이익창출을 위해 일하고 자본은 이익이 나는 곳으로 이동한다. 6공화국 초기시절 경제청문회때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회장이 "기업인은 시류에 따라야한다"는 말을 했다가 언론의 호된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정회장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당시 그의 주장은 진실이었다고 본다. 아무튼 기업인은 돈을 버는 것이 최대의 목표다. 애국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우리나라 기업을 인수한다고해서 경제가 어느나라에 예속된다는 말은 맞지 않다. 물론 2차대전이전에는 서구열강들이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어 경제예속이라는 말이 맞았다. 그러나 2차대전이후 GATT체제가 출범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식민지시대에는 제로섬게임이었지만 이제는 포지티브섬게임으로 변했다. 다음으로 개혁에 대해 말하겠다. 나는 경제를 민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세가지 원칙을 지켜야한다고 본다. 첫째는 책임정치 책임경영이고, 둘째는 공정한 경쟁, 그리고 셋째는 공정한 경쟁에서 낙오한 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다. 우선 책임경영풍토가 조성되기 위해서는 주주들이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한다. 나는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한데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고싶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그동안 집권당이 아무리 정치를 잘못해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아마도 야당은 경험이 없어서 집권해도 정치를 잘할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많이 한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지난해 처음으로 야당이 비록 적은 표차이긴 하지만 승리했다. 아마 다음선거부터는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 선거풍토가 조성될 것으로 본다.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책임경영을 하지 않은 것은 정부에도 문제가 있지만 주주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주주들은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한다. IMF는 처음에 우리에게 단 1주라도 갖고있으면 경영책임을 물을수 있어야한다고 권했다. 그러나 노.사.정합의에서 이 기준이 0.01%로 높아졌고 최근 국회에서 다시 0.05%로 올라갔다. 0.05%란 전체 발행주식수를 기준으로 하기때문에 매우 높은 기준이다. 0.05%를 다시 0.01%로 낮춰야한다.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인 M&A도 완전히 허용돼야 한다. 책임경영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현재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3분의1이상 취득하기 위해서는 이사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있다. 이는 외국인의 적대적인 인수합병을 막는 길이다. 어느 이사가 자신의 목이 달아나는데 주식취득을 승인해줄 것인가. 이사회 승인규정을 없애 외국인의 적대적 인수합병을 허용해야한다. 그래야만 경영자들이 경영을 부실하게 하지 않고 책임경영을 하게된다. 두번째 공정한 경쟁이 필요하다. 이를위해 파괴적인 경쟁을 없애고 건설적인 경쟁풍토를 조성해야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치시장에는 건설적인 경쟁이 없었다. 정책대결보다는 북풍조작등 파괴적인 경쟁만이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지금까지 힘없는 자의 편을 들지 않았다. 주주와 중소기업들이 가만히 앉아 당하니까 이꼴이 됐다.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 과보호조항을 철폐해야한다.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시장이 투명해야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불신하고있다. 투명해야만 공정한 경쟁이 될수 있다. 경쟁을 제한하는 모든 규제는 과감하게 풀어야한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얻도록 노력해야한다. 셋째 경쟁에서 낙오한 자에 대한 사회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해직자등을 위한 사회적인 안전망을 만들어야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사적인 안전망만 있었다. 노동자들은 기업에 대해 생존보장을 요구해왔다. 나는 얼마전 캉드쉬 IMF총재에게 이번 개혁중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한 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말한적이 있다. 미국도 지난 1930년대에 우리처럼 사회적 안전망을 처음 도입했다. 사회안전망은 자칫 지나칠수가 있다.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위해 안전망을 너무 많이 만들곤 한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면 다시 안전망을 크게 줄이는 개혁을 하곤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는 먼 훗날의 일이 될 것이다. 개혁은 항상 위기상황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 개혁은 10년이나 15년후에 꽃을 피운다. 미국도 카터 대통령당시부터 규제완화에 나섰으나 94년부터 호황을 맞고있다. 영국도 79년부터 개혁을 꾸준히 추진한 결과 90년대 중반부터 효과를 얻고있다. 반면 프랑스는 정권교체로 개혁이 중단되는 바람에 성공하지 못하고있다. 집권당이 바뀌더라도 개혁은 꾸준히 추진돼야 한다. IMF한파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물론 내년에는 마이너스성장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혁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혁은 10년이상해야 성공한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