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돈 안드는 정치를 하려면 .. 황인정 <전 KDI 원장>

이제 우리 정치도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극복해야 한다는 데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우선 정치에도 비용개념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우리 정치의 고비용구조는 정치인의 정치권 진입비용 뿐만 아니라 유지 관리비가 너무 높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정치인들이 인기를 사고 선거전에서 표를 얻기 위해, 또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입한다고 하면 과연 이들 정치인이 제도를 올바로 운용하고 정책을 합리적으로, 또 양심적으로 결정할수 있을까. 그들은 그 많은 부담을 누구에게 전가하려 할 것은 아닌가. 높은 정치비용은 개인 차원의 부담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 국가 차원의 고비용 정치가 나라전체의 효율을 저하시키고 또한 기업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부담을 지워서 우리 경제의 국제경쟁력을 그만큼 약화시킨다는 이유 때문이다. 한국경제의 위기를 불러온 정경유착의 시발은 바로 고비용 정치구조로부터 연유한다. 한국정치의 고비용 요소는 첫째 높은 선거비용을 들수 있다. 선거에 당선된 사람은 물론 결과적으로 들러리가 된 다른 후보들이 선거 과정에서 지출한 경비가 너무 높은데 문제가 있다. 대통령, 국회의원, 각급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원 등 선출 공직의 수와 종류를 생각해보면 선거관련 정치 진입비용만 해도 천문학적 규모에 달할 것이다. 둘째 선거관리위원회와 관련 행정기관이 각종 선거 때문에 지출하게 되는 예산과 행정비도 상당한 수준이다. 셋째 정치비용은 그 외에도 선거전후의 정치활동 내지 조직관리에 필요한 각 정당의 중앙및 지역구 사무소의 유지 관리비 등도 포함된다. 국회의원들 스스로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바로 지역구 관리비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넷째 국회의원의 세비 등을 포함하여 국회운영에 소요되는 예산 지출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다섯째 정치활동에 따르는 기회비용이 너무 높지는 않은가. 각종 선거과정에서 동원되는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의 기회비용도 결과적으로 국민경제가 떠안아야 하는 비용이다. 기회비용은 또한 국회 활동에서도 발생한다. 전문성이 결여되고 그 운영방식이 지극히 기술적 실무적 차원에 매이기 때문에 국회개회중 특히 상임위원회 활동에 행정기관의 장과 많은 간부들이 동원된다. 과연 이 경우 발생하는 기회비용은 결국 누가 부담하는가. 여섯째 공약에 따른 각종 비용도 문제가 된다. 표만 의식한 정치권이 이익집단의 압력에 굴복하여 터무니없는 공약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될 대통령을 선출하는 경우 후보자 개인에게 집중되는 이익집단의 압력은 결국 정치논리에 의한 공약의 남발을 가져오게 한다. 공약은 결코 공짜가 될수 없다. 결국 재정적으로 큰 부담을 안겨주거나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 정치권에 대한 불신 등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정치과정에 직접 간접의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 정치가 생산해낸 결과가 과연 그만한 값이 있는가. 물론 그 답은 주관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가 고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제 몫을 다 하고 있다면 누구도 탓할 이유가 없다. 문제의 다른 한 면은 바로 한국정치의 비효율과 후진성에서부터 연유한다. 민주국가에서 정치는 국회라는 제도적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간의 사전 협의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정쟁때문에 민생현안을 두고 개원조차 제때 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국회가 개원이 되는 경우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순조로운 기능수행이 이루어진 경험은 많지 않았다. 또한 전문성의 부족때문에 직접 간접으로 투입되는 인력과 시간을 감안하면국회의 국정심의나 입법과정은 졸속이 아니면 비능률적인 경우가 많았다. 이제 우리사회 모든 분야에서 국제경쟁력이 향상되어야 한다. 정치권도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개선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내각책임제 문제, 대선거구 제도, 국회의원 수의 감축과 정당 명부제도,중앙당조직과 지역구 관리문제, 정치자금 조달, 국정감사기능의 국회이관 등이 검토대상이 될 것이다. 다행히 우리 정치권이 이 문제에 도전하고 나섰다. 멀지않아 국회는 정치개혁특위를 가동할 것이라 한다. 역설적이지만 IMF파고로 불어오는 외풍을 타고서라도 올바른 정치개혁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7일자).